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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회 혁신, 근성이 답이다 - 조서환 회장
글쓴이 :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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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충남 청양 칠갑산 자락 산골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가난한 아버지는 학비가 면제된다는 이유로 나를 육군3사관학교에 진학시켰습니다. 그런데 장군을 꿈꾸던 스물세 살 육군 소위는 수류탄 폭발 사고로 오른손을 잃었습니다. 손이 없어진 아들을 찾은 아버지는 대성통곡하면서도 한 가지 당부를 하셨습니다.


"꼭 살아야 한다."


온몸을 붕대로 칭칭 감은 병상의 나에게 초등학교 동창인 지금의 내 아내가 나타났습니다. 가족들의 극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나를 선택한 아내를 나는 행복하게 해주어야 했습니다. 손은 틀렸으니 입을 많이 쓰는 교수가 되겠다는 단순한 생각에 왼손으로 열심히 쓰며 공부해 경희대 영문과에 진학했습니다. 그렇지만 대학 4학년 때 이미 두 아이 아빠가 된 나는 교수의 꿈보다 가족생계가 급했습니다. 이때부터 내가 겪은 좌절은 처절했습니다. 오른손 없는 사람을 뽑을 회사는 없었습니다. 1981년 하반기 애경유지 면접에서는 손이 없다는 이유로 중도 퇴장 당하는 수모를 겪었습니다. 인근 구로역으로 간 나는 극심한 좌절로 철로에 뛰어들 생각까지 했습니다. 그 순간 꼭 살아야 한다.’며 울며 내 손을 잡아주던 아버지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나는 미친 듯이 다시 면접장으로 달려가 당황해하는 면접관들 앞에서 설움과 울분을 터뜨렸습니다.


난 깡패짓 하다가 손을 잃은 것이 아닙니다. 국가를 위해 희생했다는 자부심으로 힘든 날들을 버텨왔습니다. 그런데 왜 면접 중단입니까? 저는 오른손을 잃는 순간부터 삶을 대충 살 생각을 버렸습니다. 절 합격시켜 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앞으로 저 같은 사람이 또 온다면 위로의 말 한마디는 해주십시오.”


그리고 뒤돌아 나오는데 한 여성 면접관이 나를 불렀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녀가 바로 애경 장영신 회장이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합격통지 전보를 받았습니다. 이처럼 극적으로 취업에 성공하였지만 막상 회사에서 내가 맡은 일은 공항에 나가 외국 손님맞이나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때 외국 손님들 명함에서 마케팅이란 단어를 발견하였습니다. 당시만 해도 낯선 단어였지만 나는 마케팅에 나의 미래를 걸고자 대학원에 진학해 주경야독을 시작하였습니다. 석사학위를 받을 무렵 외국인 투자가 허용되어 외국인 투자자들이 물밀 듯이 몰려왔고, 나는 회사 마케팅 실무자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이때 럭스’ ‘비놀리아’ ‘썬실크브랜드 매니저를 맡았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로샴푸’, ‘2080치약이란 히트 브랜드를 탄생시켰습니다. 그러자 헤드헌팅 업계에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장 회장에게 외국기업에서 마케팅 기법을 더 배워 오겠다고.’고 말씀 드린 후 다이알코리아로 이직하였습니다. 불과 6개월 후 나는 불과 35살 나이로 마케팅 중역인 마케팅디렉터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장 회장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회사는 적자였고, 나를 필요로 하였습니다. 월급을 절반 이하로 줄여야 했기에 잠시 고민했으나, 나를 처음 받아준 회사 은혜에 보답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나는 애경을 화장품 회사로 변신시켜 다시 흑자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장 회장이 정계에 진출하였고, 이를 받아들일 수 없던 나는 1001의 경쟁을 뚫고 KTF 마케팅전략실장 상무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KTF에서의 내 전략은 난공불락이었던 SKT와의 통신시장 점유율 역전을 위한 대학생 중점 마케팅과 010 번호 도입, 번호이동제 실시 등이었습니다. 나중에 부사장으로 승진하여서는 KTF ‘(SHOW)’ 브랜드를 탄생시켜 KTF를 비약적으로 성장시켰습니다. 2008KTF 부사장 시절이 내 인생의 정점이었습니다. 졸저 모티베이터(동기를 부여하는 사람들)’가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각종 TV와 라디오 출연 제의가 쇄도했습니다. 각종 강연도 줄을 이었습니다. 2007년부터 2년간 회사는 전무후무한 최고의 성장가도를 달렸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인생 2모작을 진지하게 고민했습니다. 때마침 전 세계 72개국에 진출해 있는 세라젬 그룹에서 러브콜이 왔습니다. 글로벌 마케팅을 꿈꾸던 나에게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KTF에 사표를 제출하고는 화장품 사업을 하고자 세라젬에 입사해서 3개월 만에 중국과 한국에 각각 회사를 설립했다.


손 없는 세월을 어떻게 참고 살았습니까.”


숱하게 받는 질문입니다. 내가 마케팅 업계에서 이만한 위치에 오른 것은 어떤 역경에도 굴하지 않겠다는 생각의 태도덕분입니다. ‘근성이 답이다.’라는 마음가짐 하나로 이겨냈습니다. 생각의 태도를 바꾸는 혁신과 근성이 있어야 역경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위대한 사람은 기회가 불공평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할 수 없어도 할 수 있다고 말하며 일단은 들이대야 합니다. 처칠의 말을 기억합시다.


Never give up!(절대로 포기하지 말라!)


Never never give up!!(절대로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


Never never never ever give up!(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다시는 포기하지 말라!!!)


조서환
조서환마케팅그룹 회장
()상호존중과 배려운동본부 부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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