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의 인생관리
상호존중과 배려운동본부 제29회 희망포럼에서는 지난 7월 6일 저녁 김형석 연세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를 초빙해 강연을 들었다. 김 교수는 평양에서 20리 떨어진 시골 대동에서 창덕소학교를 다녔는데 이 학교는 7살 위인 김일성이 다닌 학교이기도 하다. 기독교 집안이었던 탓에 해방이후 공산당의 탄압이 극심해지자 월남한 김 교수는 이후 연세대 철학과 교수로 평생을 재직하였다. 98세의 현역 철학자로 지금도 왕성한 저술과 강연활동을 하고 있는 김 교수는 이날 한 세기 가까이 살아온 인생을 반추하며 노년의 시기는 어떤 의미를 담고 있으며 이 시기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 성찰과 당부가 담긴 말을 한 시간 가량 이어가며 참석자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이날 김 교수의 강연 내용을 편집국에서 요약 정리하였다. |
평양 만경대 서남쪽 시골 고향에서 나는 평양으로 유학하는 첫 중학생이 되었다. 그러자 아버지께서는 나를 불러 “나와 내 가족만 생각하면 지도자가 못된다. 항상 몸담은 조직과 사회, 그리고 국가를 생각하도록 하라.”고 당부하셨다. 학교 교육은 못 받았지만 교회에서 자란 아버지의 기독교 정신이 살아있는 말씀이었다. 이후 나는 평양 숭실중학교에서 시인 윤동주 등과 공부했다. 이 학교는 북한 주민들이 가장 존경했던 조만식 선생이 다닌 학교로도 유명하다. 나는 세 살 위였던 윤동주 시인의 맑고 깨끗한 성품을 본받고자 했고, 감옥에서 나온 도산 안창호 선생의 강연에 감동 받았으며, 고려대 설립자인 인촌 김성수 선생께도 많은 가르침을 받아 스승으로 존경하고 있다.
그리고 나와 서울대 김태길 선생, 숭실대 안병욱 선생은 평생 벗으로, 또 스승 못지않게 서로 존경하며 교류했다. 학문의 깊이는 김태길 선생이, 사회활동은 안병욱 선생이 앞섰다면, 나는 그 중간쯤 될 것이다. 한번은 안 선생이 내게 전화해서 “우리 셋도 이제 80이 넘었으니 계절이 바뀔 때만이라도 만나 좋은 시간 갖자.”고 했다. 그거 좋은 생각이라며 김태길 선생에게 전화했더니 “너무 가까이 지내다가 한 사람씩 떠나면 남은 사람은 힘들어서 어떻게 사나. 지금처럼 떨어져 일해야 한 사람이 가더라도 이제 갔구나 하고 무덤덤하게 넘어가지.” 라고 말했다.
75세까지 계속되는 성장
흔히 1920년생 동갑내기인 우리 셋을 철학계의 삼총사라고 한다. 한 15년 전쯤 우리는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고 알찬 나이를 두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60세에서 75세 사이였다는 데에 뜻을 같이 했다. 이때를 사과나무가 열매를 맺는 성숙한 나이로 본 것이다. 50대까지의 삶은 나와 가족에 제한되다가 60대가 되면 비로소 사회적 존재로서 철이 드는 제2의 인생을 맞이한다. 공자께서 육십이이순(六十而耳順)이라고 하였듯이 60이 넘어서니 누가 무슨 말을 하여도 흔들리지 않아 내가 나를 신뢰할 수 있어 사회적 존재로서 성장을 시작하니 말이다. 이 성장이 75세까지 계속 이어짐을 체험한 나는 그 이후 사회에 행복의 가치관을 심어주는 책임과 몫을 감당하기 위해 열심히 건강관리를 하며 활동하고 있다. 김수환 추기경은 87세, 김태길 교수는 88세에 돌아가셨지만 돌아가시기 1~2년 전까지 활발하게 활동했고, 안병욱 교수도 90세까지 변함없이 활동하다가 94세 돌아가셨다. 이처럼 100세 인생을 품위 있게 살며 사회에 이바지하려면 건강관리와 함께 반드시 해야 할 일 세 가지가 있다.
백세시대에 반드시 해야 할 일 3가지
첫째는 꾸준한 독서이다. 독서하는 사람은 새로운 지식과 관심에 대한 갈망이 있기에 그만큼 성장한다. 문화적으로 세계에 공헌한 영국, 독일, 프랑스, 미국, 일본 등 다섯 나라 국민은 80% 이상이 100년 이상 독서를 하고 있다. 한때 세계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러시아와 중국은 불행히도 공산주의를 선택한 이후, 스페인과 이탈리아도 어느 순간부터 독서를 멀리해 하지 성장이 멈추었다. 독서야말로 개인과 국가의 성장을 위한 토양이다.
둘째는 과거에 하지 못했던 취미활동과 봉사활동의 시작이다. 취미활동을 70대에 다시 시작하면 성공률과 보람이 훨씬 높아진다. 그리고 보수와 관계없이 일해야 한다. 일본 사람들은 90이 넘으면 절대 놀지 말라고 한다. 봉사활동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야 사회적 존재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다.
셋째는 나를 위해서만 살지 말고 더불어 살도록 한다. 사회는 그러한 사람을 요구하고, 또 그래야 존중받는다. 손기정 선생이 돌아가시기 얼마 전 큰 상과 상금을 받은 적이 있다. 이에 선생은 세무사를 찾아가 상금에서 세금을 많이 낼 수 방법을 찾아달라고 부탁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당신은 국가에서 평생 큰 은혜를 받았기에 살아생전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세금이라도 많이 내야 마음이 편할 것 같다는 까닭에서였다.
복지사회에서 질서사회로
세계질서는 오랫동안 힘이 지배하였으나 이제 복지사회로 전환하고 있다. 이는 인간이 인간답게 살 권리를 보호하려는 정의가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진정한 선진사회가 되려면 이도 뛰어넘어 질서가 지배하는 사회로 발전해야 한다. 질서사회는 법 이전에 선하고 아름다운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윤리적 가치와 정의가 지배하는 사회이다. 이는 공맹사상의 근본이기도 하다. 인간답게 살기 위한 인간 목적관을 먼저 정립해야 한다. 정치 경제가 목적이어서 안 된다. 단, 일부 극단적 주장처럼 평등사회를 만들기 위한 수단으로 정의를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모든 목적을 평등에 두면 올라서는 것을 눌러서라도 평등하게 하려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국가가 사사건건 관리하고 규제하려 한다. 국가의 역할은 민간의 노력을 키워주는 것이지 옭아매는 것이 아니다. 미국에서는 평등 이전에 더 많은 사람들이 자유를 누리도록 뒷받침해주는 것이 정의라고 여긴다. 개인의 총기 소지조차도 규제가 아니라 자유롭게 허용하면서 사고 없는 나라를 만들려 하는 것이 미국적 질서이고, 이것이 오늘날 미국을 초강대국으로 발전시켰다. 동양에서도 많은 사상가들이 ‘더 많은 사람이 인간답게 살도록 하기 위한 인간에 대한 책임’을 설파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질서사회이다. 진정으로 나라 걱정을 하는 지도자라면 정권 걱정이 아니라 어떻게 정의가 살아있는 질서사회를 만들 것인가 고심해야 한다.
내가 나를 위해서만 살면 정의도 질서도 남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상존배 운동처럼 더불어 살아야 한다. 100세 시대에 가장 행복한 사람은 이런 인사를 받는 사람이다.
“고맙습니다. 우릴 위해 수고하셨습니다. 같이 살았기 때문에 이 시대가 행복했습니다.”
오늘 나는 100세 시대 인생관리의 중심에 상존배운동이 있음을 알았다. 그러니 상존배운동을 결코 작은 운동이라 생각하지 말고 꾸준히 전개하여 좋은 열매를 맺기 바란다. 그래야 행복을 나누고, 이러한 마음과 운동은 대한민국의 역사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