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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3-11-09 13:27:32
  • 수정 2013-11-13 12:3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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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을 문화, 갑을 관계의 뿌리는 권위주의 문화에서 찾을 수 있다. 수직 체계가 강한 사회에서 나타나는 권위주의 문화는 권력자인 갑이 그렇지 않은 을에게 갖가지 횡포를 부리는 경우가 많다. 부정적인 갑을 문화는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경제적 관계에서만 갑을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세습적 관계인 가족·부부 사이에서도 강자와 약자는 늘 존재하고 있다. 권위적인 갑은 상대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일방적인 행동을 한다. 이에 을은 깊은 상처를 입고 절망과 무력감에 빠질 수밖에 없다. 권위주의 문화를 없애기 위해서는 서로 예의를 다하고, 문제가 생길 경우 남 탓으로만 돌릴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잘못과 책임도 함께 인정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88만원 세대가 화두로 등장하면서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고 함께 살아가는 공생에 대한 사회적 합의 없이는 경제성장과 안정도 어렵다는 의식이 확산되었다.  우리나라는 특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공동체 지표가 낮고, 집단 간의 관용성은 더욱 낮으며, 행복감 역시 바닥권이다. 이런 가운데 2013년 모 우유회사로 대표되는 갑의 횡포가 사회 이슈화 되어 공생의 중요성을 다시금 일깨워 주었다. 다행히 현재 사회 곳곳에서는 갑을 중심으로 한 권위주의 문화 청산을 위한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하여 인천의 한 기계가공제작 업체를 찾아가 보았다.

  여러 경로로 수소문해 찾아간 이 업체 강한수 사장(58. 삼일기계 대표)40년 가까이 기계가공 외길을 걷고 있었다. 이 회사는 1차 하청업체로 을의 입장일 경우가 많지만 때로 일이 밀리면 재하청을 주는 갑이기도 했다. 기자를 만난 강 사장은 뜻밖에도 갑이 아닌 언론보도에 대한 불만부터 털어놓았다. 갑을의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한 추측성 기사가 오히려 갑을의 갈등을 부추긴다는 항변이었다. 그러면서 일부 사례를 과대 포장하여 일반화시키는 무책임한 언론보도가 구조적 모순을 해결하는데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는 뼈아픈 지적도 했다.



 강 사장은 갑을관계도 결국 소통의 연장선에서 보아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모 유통회사처럼 계약 서류에 자신들을 을로 하고 협력업체를 갑으로 표현한다고 해서 실제 달라질 게 없다는 것이다. 지나치게 갑을관계 프레임에 빠져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 식으로 사건을 몰고 가다 보면 비이성적인 을과 갑을 낳을 뿐이다. 상생, 동반성장, 골목상권 등 경제민주화를 상징하는 핵심 용어들도 따지고 보면 갑을의 소통이 제대로 안 돼서 생긴 문제이다.

  그래서 강 사장은 상호존중과 배려운동에 큰 관심을 보였다. 갑과 을 사이에 어음 거래가 상당 부분 줄어들면서 상황이 크게 좋아졌지만 지나친 가격 후려치기, 결재 미루기, 과도한 접대 요구 등 일부 남아 있는 악습은 갑을 사이에서 은밀히 이루어지는 관행이니 이를 국가나 언론이 나서서 해결할 수는 없고, 상존배 같은 국민운동 확산에 기대를 건다는 것이었다.

  사실 갑을관계는 사업상 자연스럽고 때론 생산적인 시스템이다. 갑에게 선택받기 위해 을끼리 치열한 경쟁을 하다보면 이 과정에서 자기 혁신이 뒤따르고, 부가가치를 창출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갑을관계는 청산의 대상이 아니라  상호존중과 배려가 더 필요할 뿐임을 강 사장은 재차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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