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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6-03-18 21:09:52
  • 수정 2016-03-18 21: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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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복무를 마친 중년 이상의 남자들이라면 누구나 남한산성이라는 말이 갖는 부정적 이미지를 알 것이다. 인권 사각지대로 알려진 육군형무소가 남한산성에 있었기에 남한산성 가고 싶어?’ 이 말 한 마디는 대부분의 장병들에게 가장 위협적인 말이었다. 그러나 육군형무소는 1985년에 장호원으로 이전하였고, 2년 전에는 명칭도 국군교도소로 변경하였으니 이제 남한산성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국군교도소는 이처럼 장소와 명칭만 바뀐 것이 아니라 민간교도소 못지않은 교정·교화기관으로 새롭게 변모하였다. 이는 한순간의 실수로 영어의 몸이 된 군인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기위해 위해 부단히 노력한 결과이다. 이 변화는 교도소 정문 바로 안쪽에 세워진 큰 표지석의 희망대라는 글귀를 보는 순간 이미 느낄 수 있다. 수용자로 하여금 희망을 갖고 미래를 설계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희망대는 국군교도소의 별칭이기도 하다. 육해공군과 해병대 전군(全軍) 통틀어 하나밖에 없는 군인 교도소 수용자들은 수련생으로 불린다. 극심한 좌절감에 자칫 심신을 포기하기 쉬운 수련생들에게 자신의 미래를 절대 포기하지 않고 희망을 일구라는 뜻을 담고 있는 호칭이다.



박호종 국군교도소장(중령)32년째 헌병장교로 복무하고 있는 이 분야의 베테랑이었다. 17년 전 육군대학을 마치고 이곳에 잠시 근무한 적이 있는 그는 2년 전 다시 이곳으로 와 수련생들에게 실질적인 희망을 주는 교정·교화를 실시함으로써 국군교도소를 국민과 군으로부터 신뢰받는 교정기관으로 자리매김하고, 개인적으로도 국군교도소장의 중책을 명예롭게 마치겠다는 의지를 실천하고 있었다. 수련생들이 건전한 군인, 나아가 건전한 국민으로 거듭나도록 하기 위해 군용 침대 및 비품을 생산하는 기술교육, 자동차 정비와 용접, 조리와 같은 기술교육, 정보화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사이버 교육 등의 교육 교화 외에도 박 소장이 특별히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은 인성교육 강화였다. 그렇기에 지난 연초에는 상존배 운동본부를 직접 찾아와 교도소에 상호존중과 배려의 정신을 접목시키기 위한 방안을 진지하게 논의하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상호존중과 배려야말로 통제와 강제성이 아닌 자율과 소통에 의한 수용자 중심의 자치제도를 정착시킬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교도소로 돌아가 우선 본부 건물 현관부터 시작해 화장실, 식당, 수용시설의 모든 생활관과 관물대, 종교시설 출입문 등 눈에 띄는 곳이라면 어디든 상존배 스티커를 붙여놓았다. 이러한 노력으로 수련생들이 상존배에 대한 인식을 하기 시작하자 정두근 총재에게 직접 방문 강연을 요청하였다.


정 총재가 국군교도소를 찾은 것은 지난 316일 오전이었다. 사실 정 총재는 교육을 준비하며 많은 고심을 하였다. 수련생들의 나이와 군 경력(이병부터 장군까지 모든 현역군인), 이곳에 오게 된 사유 등이 워낙 다양하기에 어디에 비중을 두어야 할지 어려웠기 때문이다. 수련생들은 1심 판결 후 항소 또는 상고 중인 미결수와 형이 확정된 기결수로 구성돼 있다. 형기 역시 천차만별이다. 단지 여군은 이곳이 아닌 계룡대 근무지원단에 있다가 형이 확정되면 민간교도소로 이송된다.




정 총재가 박 소장과 간부들의 안내를 받아 종교시설로 들어서자 수련생들은 일제히 박수로 환영하였다. 평소 교육받아온 상존배 운동의 창시자에 대한 관심과 기대가 묻어나는 박수였다. 미결수와 기결수들이 가운데 줄에 앉고, 양 옆에는 수련생 숫자와 엇비슷한 육군·해군·해병·공군 소속의 교도관(부사관)과 교도병(병사)이 앉아 정 총재의 강의를 경청하였다.


뒤쪽에 희망이라는 글씨를 크게 새긴 수의(囚衣)를 입고 있는 수련생들은 대부분 앳되고 순박한 얼굴이었다. 바깥 활동에 제한이 있어서인지 한 결 같이 뽀얀 피부여서 거리에서 마주치는 여느 대학생들과 다름이 없었다. 그렇기에 더욱 안타깝고, 젊음의 열정을 가슴에 묻느라 속이 타들어갈 이들에게 어떤 말로 희망을 주어야 할지 부담감이 짓누르는지 정 총재는 쉽게 말문을 떼지 못했다. 잠시 정적이 흐른 후 정 총재는 평정심을 되찾고 다른 어느 때보다 절실한 목소리로 강연을 시작했다.


병영사건 사고는 가해자와 피해자, 이로 인해 지휘책임을 져야 하는 간부, 자식을 국가에 맡기고 명예로운 전역을 손꼽아 기다리던 가족을 고통스럽게 하기에 모두가 피해자라는 점에서 일반 사회의 사건 사고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특히 이곳에서 감내하기 어려운 고통을 겪고 있는 여러분들이 새로운 희망을 일구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상호존중과 배려의 정신으로 자신을 수련하는 일입니다.”


이렇게 말문을 뗀 정 총재는 2003년에 육군 32보병사단장으로 취임하자마자 불과 두 주 사이에 폭력사건에 연루된 병사들 일곱 명을 헌병대장 건의에 따라 연달아 구속시키면서, 일제 잔재인 병영악습을 근절하기 위한 상호존중과 배려의 병영문화운동을 시작했음을 설명하였다. 교육 훈련시의 명령어를 제외하고 일반 병영생활에서는 계급을 떠나 서로 존중어를 사용하고, 상대의 말을 경청하며 서로 칭찬하고 정감어린 인사말을 나누며, 올바른 군대예절을 생활화하자는 것이 이 운동의 핵심이었다. 처음에는 반발하던 간부와 병사들이 막상 이를 시행하면서 초기의 어색함을 극복하자, 서로 아끼고 위하는 전우애를 바탕으로 한 진정한 군기가 서 폭언과 폭력 없이도 자율적 교육 훈련이 이루어져 병영 분위기가 밝아짐은 물론이고, 전투력 역시 향상된다며 적극 호응하기 시작했다. 그 후 정 총재는 육군훈련소장과 제6군단장을 역임하며 상호존중과 배려의 병영문화운동을 꾸준히 시행해 병영 사건 사고를 획기적으로 줄였다. 그렇지만 군 수뇌부의 이해 부족으로 이 운동을 군 전체에 확산시키지 못한 채 전역함으로써 병영악습을 완전히 근절하지 못해 이에 따른 피해를 입는 장병들이 끊이지 않고 있는 현실에 대해 제도 개선의 권한이 있는 군 수뇌부가 먼저 책임지고 반성해야 한다는 정 총재의 지적은 병영사건 사고가 결코 개인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2010년 연말에 전역한 정 총재는 곧바로 사단법인 상호존중과 배려운동본부를 설립하였다. 이 운동은 군뿐 아니라 온갖 갈등으로 분열을 일으키는 사회에도 반드시 필요한 운동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많은 사람들이 상호존중과 배려운동에 공감하고 동참하여 상존배 운동은 본격적인 선진사회운동으로 자리매김하였고, 이제 이 운동을 군에 역류시키려 한다고 밝힌 정 총재는 이 운동이 진작 군에 정착되었더라면 자신과 수련생들의 안타까운 만남도 없었을 것이라며 위로하고 결코 좌절하지 말 것을 당부하였다. 순간적인 감정 조절과 그릇된 군대 문화 적응에 실패하였을 뿐 아직 기나긴 인생에 실패한 한 것은 아니니, 비온 뒤에 땅이 굳어지듯이 수련생들은 남들보다 다소 일찍, 다소 심하게 비바람의 시련을 겪고 있을 따름이라는 것이 정 총재의 생각이었다. 겨울이 깊어지면 다시 봄이 오듯이 수련생들의 인생에는 아직 많은 기회가 남아 있기에 정 총재는 다음과 같은 말로 강연을 마무리 지었다.


상호존중과 배려를 부적처럼 가슴에 새기고 이 역경의 시간을 이겨내면 반드시 새 삶의 기회가 올 것이고, 그 기회를 극대화시키는 힘은 바로 상호존중과 배려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존중과 배려의 출발은 바른 언어, 존중어 사용입니다. 영국의 저술가 새뮤얼 스마일스는 자조론에서 생각을 바꾸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습관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면 성격이 바뀌고, 성격이 바뀌면 운명이 바뀐다.’고 하였습니다. 나는 여기에 한 마디 덧붙이고 싶습니다. ‘말을 바꾸면 생각이 바뀐다.’ 대부분의 폭력은 폭언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존중과 배려로 반드시 찾아올 희망의 날을 준비하십시오.”



한 시간여의 강연을 마친 정 총재는 수련생들과 짧지만 인상 깊었던 만남을 마치고 교도소 식당에서 간부들과 오찬을 함께 했다. 소장부터 병사까지, 외부 손님들 역시 예외 없이 식판을 들고 음식을 직접 담아오는 자율배식이었다. 국군교도소는 운영과, 교정교화과, 기능교육과, 교도대 등 크게 네 영역으로 구성돼 있고, 이에 따른 기간장병들도 수련생들과 비슷한 숫자가 있는데 밥과 반찬은 수련생들과 똑같이 먹고 있었다. 웬만한 가정의 식탁보다 반찬 가짓수가 많아 교도소 식단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민간교도소보다 한 끼 식사비가 천 원 가까이 더 배정되어 있다고 한다. 소금국에 콩밥 먹는다는 말은 그야말로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이야기였다. 면회도 수련생들을 성실성 여부에 따라 1~4등급으로 분류한 후 등급에 따라 한 달 7회부터 4회까지 보장하고 있었다.


이날 정 총재는 반가운 옛 부하를 만났다. 200332사단에서 처음 상존배 운동을 시작할 당시 헌병소대장이던 김규원 소령이 이곳 운영과장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육군대학 입학을 앞두고 있는 김 소령은 상존배 운동을 이렇게 회상했다.


당시 저는 25살 여군으로 헌병 소대장을 맡고 있었는데 상존배 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다소 낯설긴 했지만 병영악습을 근절할 수 있는 계기로 삼아보고자 적극 실천했습니다. 특히 존중어 사용은 계급과 나이가 불일치하는 군에서 반드시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저부터 20대 후반에 입대한 신병에게 존중어를 사용했습니다. 소대장이 솔선수범하니 다른 선임병들이 따르지 않을 수 없었죠. 그렇게 서너 달 지나자 부대는 소통과 화합의 전우애로 뭉쳐져 병영생활에서의 갈등이 사라졌습니다.”


상존배 운동의 효과를 직접 체험하고 자랑스럽게 여기는 김 소령에게 정 총재는 부디 승승장구하여 최초의 여군 헌병감이 되어 병영문화 선진화에 앞장 서줄 것을 당부하였다. 이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던 박 소장은 김 소령의 업무 능력을 높게 평가한 후, 기간 장병들의 노력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수용시설 개선에 대한 근심을 털어놓았다.



남한산성에서 이전한 지 벌써 30년이 지나다보니 시설이 낙후되어 곳곳에서 쾌쾌한 냄새가 나고, 급수배관에서 나오는 녹물, 겨울철 난방의 비효율성 등이 수련생들과 기간장병 모두를 불편하게 한다고 하였다. 다행히 국방중기계획으로 2018년부터 수용동 신축공사가 이뤄질 예정이라고 하는데 이를 앞당겨서라도 공사 시작을 하였으면 하는 것이 박 소장의 바램이었다. 이와 함께 외부인의 눈에는 기간장병들의 복지 등 처우 개선문제도 해결해야 할 과제로 비추어졌다. 전체 부지 면적 6만여 평(20324m2)에 수련생이 생활하는 수용동, 기능교육장 등 핵심 수용시설 1만여 평(34496m2)을 관리해야 하고, 수용자의 건전한 군인화, 수용자의 안전한 수감과 경비, 교정·교화·기술교육 실시 등을 제한된 인원으로 수행해야 하는 기간병들은 얼핏 보아도 과중한 업무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었다. 전문 교도관 양성도 시급한 과제였다. 2014년 국군교도소 교도관을 대상으로 실시한 심리 진단에서 무려 100여 명이 스트레스와 우울증 증상을 보였다는 신문기사를 읽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는 관리 받는 사람보다 관리하는 사람이 더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음을 입증한다. 사명감 하나로 버티고 있는 교도관을 위한 전문 프로그램과 심리 치유 과정이 필요하다는 말이 결코 엄살이 아니었다. 그래서 상호존중과 배려는 수련생들뿐 아니라 교도관을 비롯한 기간장병들, 그들과 수련생들 사이에서도 반드시 필요한 운동이었다. 수련생과 교도관교도병과의 관계는 결코 적대(敵對) 관계가 아니라는 사실을 서로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존중하고 배려할 때 죄는 미워하더라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가르침을 실천하는 희망대가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국군교도소 식당에 걸려 있는 글귀를 소개한다. 취임하자마자 욕설부터 금지시켰던 박호종 소장의 평소 지론인 미인대칭 생활화이다.


 







칭 생활화


 


내가 먼저 미소 지을 때 미소는 우리를 행복하게 합니다.


내가 먼저 인사할 때 인사는 우리의 마음을 열어줍니다.


내가 먼저 대화할 때 대화는 이해를 높여줍니다.


내가 먼저 칭찬할 때 칭찬은 용기를 실어줍니다.


 


미인대칭 생활화 = 최고의 소통


 



 



<국군교도소로 옮겨온 옛 남한산성 육군교도소 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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