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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6-12-22 02:35:07
  • 수정 2016-12-22 02:4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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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1일 주한 중국문화원에서 ()상호존중과 배려운동본부 자문위원인 차홍규 교수의 세른 세 번째 개인전이 열렸다. 중국 칭화대학교 미술대학 교수 정년퇴임을 기념하는 초대전이기도 한 이번 전시회는 한중미술협회가 주한 중국문화원의 협조로 주최하였다. 조각과 평면화를 함께 하는 차 교수를 아는 사람들은 그의 작품을 대하는 순간 다소 당황한다. 평소 호탕한 웃음과 농담을 즐겨하는 차 교수의 편안한 이미지와 전혀 다른 작품세계에서 받는 생경함 때문이다.




작품 대부분은 비틀어진 얼굴을 하고 있으며 황금의 풍요를 벗어난 자리에서 고통스러워하는가 하면, 화산 분화구를 연상케 하는 심연의 늪에서 탈출구를 찾아 발버둥치는 안타까움으로 가득하다. 구멍 뚫린 지구, 용암처럼 지표면을 덮는 오염 물질을 피할 곳은 더 이상 없고, 신체 일부가 기계 부품으로 바뀌면서 사이보그를 거부하는 절규와 공포는 보는 이들을 숨 막히게 한다. 게다가 작가가 창조한 인물들은 하나같이 동네 문방구에서 파는 싸구려 로봇만큼이나 왜소해서 표정을 읽으려면 작품과 거리를 둘 수도 없다. 차라리 멀리 떨어진다면 그 두려움을 외면하기라도 하겠건만 어쩔 수 없이 작품 가까이 다가가 고통의 본질이 대체 무엇인가 살펴야 한다. 어쩌면 이는 작가의 지능적인 계산과 장치인지도 모른다. 또 그러한 작가 의도에 못 이기는 체 말려들어야 기괴한 형상의 아바타들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꼬리라도 잡을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차 교수 작품이 갖는 마력이다.










작가는 스스로 자신의 작품에 물질적 풍요로 인간은 과연 행복한가?”라는 화두를 던지면서 서구 물질문명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먼저 드러낸다. 현대인은 이브의 사과만큼이나 달콤한 물질문명의 속성을 거부할 용기를 갖고 있지 못하다. 그렇다고 하여 행복을 가장한 문명의 왜곡을 예측 못할 만큼 우둔하지도 않다. 그렇기에 작품 속 군상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면 순간의 행복에 안주하지 않고 영속적인 행복을 찾는 몸짓을 만날 수 있다. 그들은 금속 조각의 아바타에 불과하지만 그들이 소통하고자 하는 것은 환경파괴 등의 재앙을 가져온 물질문명에 대한 단순 비판과 경고만이 아니다. 극도로 부자연스러운 표정은 물질문명과 정신문명의 동반 성장이 이루어지지 않은데 따른 불균형과 부조화에서 비롯된 것이고, 몸짓 하나하나에는 황폐화된 지구환경을 되살리고자 하는 간절한 바람이 담겨 있다.




차 교수를 하이브리드 작가라고 부르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차 교수의 웃음 뒤에는 가늠하기 어려운 고통이 자리하고 있음을 알아차려야 할 것이다. 게다가 그 고통이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또 다른 고통을 억누르려면 더 많이 더 크게 웃어야 한다. 이처럼 삶의 표정을 철저하게 웃음으로 관리하는 차 교수이지만, 그는 예나 지금이나 쇳덩어리에 망설임 없이 고통의 민낯을 담는다. 산업사회의 상징물 쇳덩어리에 물질문명의 숱한 폐해를 극복하기 위한 희망의 메시지를 덧씌우는 역설을 즐긴다. 이 고통의 축제야말로 작가가 꿈꾸는 행복이다. 이에 따른 감동의 울림을 가감 없이 받아들인 사람들은 작가와 함께 고통의 축제를 즐기는 대화를 나눌 수도 있으니 내년 16일까지 계속되는 초대전 관람을 적극 추천한다. 역설의 감동에 흠뻑 빠지는 독특한 경험을 맛보는 한편, 미래의 풍요로운 삶을 위해 오늘의 고통을 축제로 승화시키는 단서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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