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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3-12-10 23: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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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인류의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는 고작 수십만 년 전에야 지구에 등장했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100세 시대로 들어섰다고 하지만 기껏해야 60여 년간 경제활동을 하는 유한한 존재의 입장에서 본다면 수십만 년 전이라 함은 엄청나게 긴 시간이다. 그런데도 학자들이 고작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흰개미의 경우 22000만 년 전에 이미 지구상에 출현하였기 때문이다. 인류의 역사는 대선배인 흰개미에 비하면 방금 태어난 갓난아기에 비유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 이미 70억을 돌파한 지구촌 인류는 지구의 전체 생물자원 가운데 개체수가 가장 빨리 증가하는 종()이 되었다. 1990년 이후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수의 포유류로 등극하였고 지구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단일종()보다 인간의 숫자가 많다는 것이 더 이상 놀랄 일이 아니다. 인간은 현재 지구상의 모든 종()이 사용할 수 있는 식량과 에너지 총량인 1차 순생산량(NPP)가운데 40%이상을 소비하고 있으며, 마실 수 있는 물의 50% 이상을 소비한다고 한다. 이로 인해 지구상에 존재하는 다른 동식물들은 인간이 남겨 놓은 얼마 안 되는 자원을 놓고 서로 생존경쟁을 벌여야 하는 상황에 처하였다. 그 뿐인가 후쿠시마 원전사태처럼 인간의 잘못으로 유출된 방사능으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토양 및 해양동식물들이 떠안게 되었다.

  그렇다면 인간은 역사시대로 접어든 이래로 타인과 타부족(민족)을 존중하고 배려하며 오순도순 더불어 살아왔을까? 우리는 이 물음에 대해 불편하지만 진실을 이야기 할 수밖에 없다. 사실 동서양 각 문명권의 동화(童話)와 동요(童謠)는 한결 같이 다툼과 갈등이 없는 동심(童心)의 세계를 형상화하여 권선징악(勸善懲惡)을 공통의 교훈으로 일깨워 준다. 물론 스파르타와 같이 극히 예외적인 경우가 있긴 하나 대부분의 문명권에서는 이기심(利己心)을 억제하고 이타심(利他心)을 키우는 착한 어린이가 되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이들이 자라나 어른이 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실제 성인남성들이 주도해온 인간 역사는 어떠한가? 20세기 초 미국 철학계의 태두(泰斗)로 이름을 남긴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 1842-1910)는 단 한 문장으로 다소 섬뜩하게 인류사를 표현한다 .

  역사는 피의 욕조이다

  인류가 역사를 기록해온 것은 3,400여 년간에 이른다고 한다. 이 기간에 살육과 학살의 전쟁이 없었던 시간은 얼마나 될까? 놀랍게도 온전한 평화시대는 단 286년간이었다. 즉 인류가 역사를 기록해온 3,400여 년간 단 8%의 기간만이 평화시대였고 92%의 시간들이 살육과 광기로 점철된 전쟁시대였던 것이다. 아이러니 하게도 현대 인류로부터 추앙받는 4대 성인(聖人) 모두가 격렬한 전쟁시대를 겪었다. 소크라테스는 그리스 도시국가 아테네의 장갑보병으로 세 차례나 참전을 하였었고, 공자(孔子) 또한 춘추오패(春秋五覇)들이 겨루는 전란의 한복판에서 사람에 대한 사랑()을 역설하면서 전쟁 상황에 내던져진 민초의 삶과 무너진 민생을 외면할 수 없었다. 중원대륙의 전쟁터를 오가며 인간존재와 인성(人性)에 대한 근원적 물음을 끊임없이 던졌다. 아울러 개인이 처한 실존적 고뇌까지 담아서 제자들과 진솔하게 나눈 대화기록(論纂孔子及其弟子之語-論語)이 전통시대 동아시아 독서인들의 대표적인 수양(修養) 지침서(指針書)였으며 오늘날 불후의 고전으로 남아 우리를 일깨워 주고 있다. 공자가 목도하고 비판한 춘추대란(春秋大亂)은 한마디로 천하무도(天下無道)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후일 역사가 사마천(司馬遷)도 고발했듯이 춘추(春秋) 242년간의 통계를 보면, “부하인 대부(大夫)로부터 시해당한 제후(諸侯) 군주가 36명이었고 망한 나라가 52개였다("弑君三十六, 亡國五十二")고 하니 크고 작은 군사정변과 전란이 끊이질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왜 그토록 오랜 시간동안 전쟁을 해왔을까? 인간이 태생적으로 안고 있는 숙명적인 이기적 유전자 탓으로만 돌려야 할까? 현대 동물행태학자나 심리학자들의 말을 빌려 보기 전에, 그래도 전쟁을 반대해온 선각(先覺)이 있음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인류의 성인(聖人)들과 양심적 지식인들은 전쟁과정에서 행해지는 인간들의 파멸적 파괴행위를 질타하며 줄곧 반전평화운동을 펼쳤기 때문이다.

  특히 전국시대(戰國時代)초기에 활동했던 묵가(墨家)의 고군분투는 한마디로 눈물겨운 감동을 안겨준다. 그들은 흔히 있을 수 있는 백면서생(白面書生)들의 세상에 대한 염세적 절규나 탁상공론에 머문 것이 아니었다. 전쟁이 극에 달했던 전국시대 당시, 영토(경작지)를 넓히고 노동력(백성)을 확보하고자 혈안이 된 군주들의 입장에서 전쟁은 부국강병을 달성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수단이었지만, 상대적으로 민초(백성)들은 세 가지 환난(患難)을 피 할 수 없었다. 즉 굶주린 사람들이 먹지 못하고 있고, 추위에 떨고 있는 사람들은 옷을 입지 못하고 있으며, 피로에 지친사람들이 쉬지를 못하고 ”(民有三患, 饑者不得食,寒者不得衣,勞者不得息)있었던 것이다. 전쟁이 계속되다보면 전투요원으로 필요한 인원은 징집되고, 군대를 유지하기 위해 백성들이 생산한 노동성과물은 공출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묵가들은 전쟁이야 말로 민생을 파괴하는 정의롭지 못한(不義) 행태라고 비판하며 직접 약자를 보호하고자 방어전쟁에 뛰어들기까지 하였다. 특히 이타심(利他心)을 발휘해야 한다고 역설하는 대목은 시공(時空)을 넘어 버릴 수 없는 가르침이다. ‘나의 가족을 아껴주듯이 이웃도 똑같이 사랑하고(兼相愛)’ ‘서로간이 이익을 증진시켜주려고(交相利)’ 했던 이들의 실천적 노력은 지행합일을 목표로 하는 동양인문정신의 생생한 귀감(龜鑑)으로 전해진다.

  니얼 퍼거슨(Niall Ferguson)등 문명비평가들은 이구동성으로 20세기를 극단의 세기였다고 정의한다. 1900년 이후 100년은 현대 역사상 가장 잔인한 세기였고 상대적인 관점에서 보아도 이전의 그 어떤 시대보다 훨씬 더 폭력적이었다. 실례로 20세기를 지배한 두 차례의 세계대전에서 이전의 그 어떤 전쟁에서보다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2차 세계대전의 총사망자 중에서 적어도 절반 이상이 민간인이었다는 사실은 더욱 충격적이다. 특히 전시(戰時)에 특정 인종과 계급에 대한 만행은 인류사의 씻을 수없는 과오로 남아 있다. 가장 악명 높은 사례는 나치의 협력자들이 아우슈비츠에서 희생시킨 600여만 명과 스탈린 체제의 옛 소련에서 발생한 정치적 폭력에 의해 희생당한 2100만 명 등이다

  폭발적인 인구증가와 함께 과학의 눈부신 발달로 인해 더 없는 물질적 풍요를 누렸지만 반대로 가공(可恐)할 대량살상이 교차했던 시기였던 것이다. 1973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한 동물행동학의 대부 K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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