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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3-12-10 23: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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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28일 (사)상호존중과 배려운동본부에서 주최하는 제10회 포럼에 참석한 안철수 의원은 ‘나눔의 미래’라는 주제로 약 70분 동안 강연을 하였다. 아래는 본지 편집국에서 요약 정리한 안 의원 강연 내용이다.


  오늘 저는 국회의원이라는 신분을 떠나 정치적 이야기는 배제하고 제가 그동안 여러 직업을 거치면서 현장에서 느낀 이야기들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의사에서 IT 전문가로, 벤처경영인에서 다시 교수로, 이제는 정치인으로 다섯 가지의 직업을 가져보았습니다. 이 다섯 가지가 전혀 다른 직종임에도 제가 적응할 수 있었던 힘은 그 속에 나눔의 정신이 관통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고등학생 무렵 이 사회에 빚을 지고 있다는 생각을 처음 하였습니다. 오직 공부만 하면 되는 제 환경이 바로 제가 갚아야 할 빚이라고 여겼던 것입니다. 그래서 의과대학 진학 후에 제가 받은 혜택, 즉 빚을 일부나마 돌려주어야겠다는 생각에 가톨릭 학생회에 가입하여 당시 생활환경이 매우 열악했던 서울 구로동을 비롯해 여러 무의촌 지역을 방문해 의료봉사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의료봉사를 통해 저는 오히려 배운 것이 많습니다.

  의료봉사를 하며 만났던 한 할머니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류머티즘 관절염으로 고생하시던 그 할머니는 도저히 거동하실 수 없는 상황이라 왕진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돌아가셨습니다. 관절염 때문이 아니라 아사(餓死)하셨습니다. 아버지가 병을 앓자 생활고에 시달리다 가출한 어머니를 대신해 중학교 1학년 손녀가 신문배달 등을 하며 할머니를 부양했는데, 손녀마저도 가출하자 할머니는 굶주림으로 돌아가셨던 것입니다. 돈 때문에 한 가정이 파괴되고 죽음으로까지 내몰리는 현실은 소설보다 훨씬 참혹했습니다. 복지에 대한 제 관심은 이때부터 싹 트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병이 낫지 않는 큰 이유 중의 하나는 약을 제 때 먹지 않기 때문인데 무료로 약을 주니 애써 챙겨 먹지 않는 사람이 많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아주 적은 돈이라도 받기 시작하자 약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이 점은 복지제도를 수립할 때 참고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의대 졸업 후에는 심장 연구에 전념하였습니다. 그러려면 컴퓨터 도움을 많이 받아야 합니다. 이때가 서울올림픽 무렵인데 컴퓨터 바이러스가 처음으로 한국에 상륙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에 이 방면의 전문가가 없어 저는 어쩔 수 없이 심장연구를 계속하기 위해서라도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을 개발해야 했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심장연구를 하다가 신종 바이러스가 나타나면 다시 백신을 만들고 하는 일을 되풀이했습니다. 시간에 쫓겨 새벽 3시간은 늘 백신 개발에 투자했습니다. 그러다가 군 제대 후 저는 한 가지 일을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놓였습니다. 바이러스 종류가 많아져 새벽시간만으로는 백신개발을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결국 저는 전문가가 절대 부족한 바이러스 연구를 선택했습니다. 물론 힘든 결정이었고, 결정 후에 고통도 많이 따랐지만 내친 김에 회사까지 설립하였습니다. 기업의 존재 의미를 한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이루기 위함에서 찾았습니다.  그리고 기업에서 수익 창출은 결과일 뿐 목적이 아니라는 생각에 열심히 일했습니다.

  10년 이상 회사에서 최선을 다하고 문득 뒤돌아보니 회사는 안정되었고, 새로운 의미를 찾고 싶어졌습니다. 이때가 2005년경입니다. 그래서 MBA과정을 공부하고 카이스트 교수라는 또 다른 선택을 하였습니다. 카이스트 학생들 중에는 부모 뜻에 따라, 부모님을 행복하게 해드리려 카이스트에 진학했다가 자신의 적성이 아님을 깨달은 이후 고통 받는 학생들이 많았습니다. 그런 학생들을 만나면 머리로 이해하려하지 말고 그들의 눈높이에 나를 먼저 맞춰야 고민과 아픔을 공감할 수 있습니다. 이는 청춘콘서트를 시작한 까닭이기도 합니다. 청춘콘서트는 이런저런 혜택에서 소외되고 있는 젊은이들을 만나 제가 갖고 있는 가치를 나누며 소통하자는 것이었기에 수도권 대학과 지방 명문대학을 제외한 다음 순위의 대학을 주로 찾았습니다. 이를 통해 저는 수도권 위주의 갇힌 사고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서울대로 자리를 옮겨서는 사재를 출연해 지역 기업이나 비영리 재단을 돕는 동그라미 재단을 설립했습니다. 제가 받은 혜택의 일부를 사회에 돌려준다는 마음으로 만든 재단입니다. 사업을 하면서 성공과 실패는 반드시 노력 여하에 달려 있지 않음을 알았습니다. 성공 요인으로 개인의 노력이 3분의 2를 차지한다면 나머지 3분의 1은 주위 도움, 사회적 여건, 운 등이 작용하는 것이므로 최소한 그 3분의 1은 성공 이후 사회환원을 해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이제 우리나라는 한국형 복지국가를 건설해야 합니다. 해방 후 가난 해결이 시대과제였다면 그 다음은 민주화였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풀어야 할 과제는 미래에 대한 불안을 해소시킬 복지입니다. OECD 국가 중 자살률 1, 출산율 최하위라는 통계는 많은 한국인들이 현재를 고통스러워하고 미래에 대한 불안에 시달리고 있음을 입증합니다. 온갖 미사여구보다 자살률 줄이고 출산율 늘리는 한국형 복지국가 건설이 시급합니다. 그 작은 노력의 하나로 제가 세운 동그라미 재단은 저소득층 소액신용대출 비영리단체 키바(KIVA)’를 롤 모델로 하고 있습니다. ‘키바(KIVA)’는 온라인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전 세계 선진국의 소액을 끌어 모아 대학 등록금, 창업자금, 수술비 등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무이자 무기한으로 빌려줍니다. 기부를 하면 그것으로 끝나지만 빌려주면 나중에 돈을 돌려받아 또 다른 사람에게 기부하므로 1달러를 기준으로 할 때 보통 8차례의 기부 순환이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또 빌려준 돈을 돌려받는 순간의 보람이 강력한 동기유발효과를 불러일으킨다고 합니다.

  그럼 오늘 주제인 나눔의 미래는 어떠한 형태라야 할까요? 우선 IT 기술을 수단으로 하는 혁신적 아이디어가 필요합니다. ‘키바(KIVA)’처럼 소셜 네트워크(Social Network)를 적극 활용하고, 모바일(Mobile)을 이용해 기부 실적을 실시간으로 공개해 나눔의 경쟁 심리를 자극하면서 펀(Fun), 즉 재미까지 주어야 한다는 것이죠. 그리고 나눔에도 경영이 필요합니다. 돈 버는 경영이 아니라 제한된 자원을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하여 최대효과를 일구어야 하므로 기부단체 등 비영리단체가 참조해야 할 사항입니다. 특히 나눔의 미래를 이야기할 때 핵심은 기부의 순환입니다. 기부가 반드시 돈일 필요는 없습니다. 시간과 재능도 훌륭한 기부입니다.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며 대신 노인들을 상대로 스마트폰 사용법 교육을 시키면 수혜자에서 기부자로 기부의 순환이 일어납니다. 나눔은 가진 자가 없는 자에게 일방적으로 베푸는 수직구조가 아닙니다. 진정한 나눔은 평등한 입장에서 받은 것을 돌려주는 것이라는 말씀을 마지막으로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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