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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4-07-16 07:4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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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자는 중용(中庸)은 기지의호(其至矣乎)이나 민선능구의(民鮮能久矣)니라.’라 하여, 지극히 좋은 중용을 오래 실천할 수 있는 백성이 드묾을 안타까워하였다. 중용이야말로 치우치지 않고 과불급(過不及)이 없는 바른 성정(性情)이건만 소인의 물욕이 미꾸라지처럼 맑은 성정을 혼탁하게 하는 것이다. 절제를 통해 천지와 조화를 이루자는 중용의 당위성이야 누구나 공감하겠지만 문제는 실천이다. 중요한 것은 중용 그 자체보다 그것을 어떻게 인간사회에 적용할 것이냐에 있다.


 세월호 참사를 겪으며 우리는 평형수라는 낯선 말을 들었고, ‘평형수야말로 선박건조기술과 운항법에 담긴 중용의 철학임을 알았다. 평형수(ballast water)는 배 밑바닥에 채워 넣는 바닷물로 배의 무게 중심을 낮추고 좌우 균형을 잡아 배가 기울었다가도 오뚝이처럼 바로 설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그렇기에 배를 운항할 때는 이 평형수를 반드시 규정대로 채워야 한다. 그러나 평형수 무게에 비례해 연료소모가 늘고, 실을 수 있는 화물의 양이 줄기에 이를 지키는 선박이 많지 않았던 듯하다. 더구나 세월호 평형수는 수백 명 승객의 안전을 지키는 생명수였음에도 화물을 더 싣겠다는 탐욕 앞에 버려졌다. 그 결과는 참혹했다. 세월호는 종이배처럼 뒤집혔고, 300명 넘는 승객이 차가운 바다 속 제물이 되고 말았다. 그것도 하필 이순신 장군의 기개가 넘치는 진도 앞바다이기에 온 국민의 비탄과 좌절은 이 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분야를 공황상태로 몰아넣었다.


 중용의 구체적 실천방안 중 하나가 상호존중과 배려이다. 중용과 마찬가지로 대립하는 양극단을 모두 포괄해서 지나침도 모자람도 없는 도덕적 규범을 실천하기위해 존중과 배려는 필요하다. 존중과 배려는 인간과 인간, 인간과 사물 사이에 지켜야 할 도리를 가장 알맞은 상태로 발전시키자는 실용주의를 지향한다. 세월호에 필요했던 것이 평형수였듯이 이제 우리 사회에는 양심과 상식의 평형수가 절실히 필요하다. 탐욕과 조급함을 극복할 평형수는 바로 존중과 배려이다.


 ‘중용을 읽고 일상적 삶의 혁명이 일어나지 않은 사람은 결코 중용을 읽지 않은 것이라는 말이 있다. 소를 잃었으면 서둘러 외양간을 고쳐야 한다. 세월호 참사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중용의 철학을 되새기지 못하고, 개인과 조직 모두 존중과 배려의 평형수를 갖추지 못한다면 사회 곳곳에 내재된 불균형과 갈등이 또 다른 형태의 참화를 불러올 것이다.


 탐욕에 눈이 멀어 평형수를 버리도록 한 선사와 승객을 버린 세월호 선장과 일부 선원이 우리의 자화상일 수는 없다. 그들은 중용철학을 이론으로만 들었을 뿐 존중과 배려의 정신으로 이를 실천하는 삶을 살지 않았다. 평소의 삶이 그러했으니 자기만 살면 그만이라는 동물적 이기주의에 따라 행동한 것이다. 반면에 어린 학생들에게 자기 구명조끼를 벗어주며 끝까지 생사를 같이 한 젊은 승무원들과 선생님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희망을 찾고자 한다. 그분들이야 말로 삶 속에서 존중과 배려를 실천해왔기에 위기 상황에서 그런 용기를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의 자화상은 바로 그러해야 한다.


 희생자들에게 명복과 용서를 빌고, 유가족들을 진심으로 위로하는 일 말고도 살아있는 우리가 할 일은 아무 잘못 없는 학생들의 희생을 헛되게 하지 않기 위해서 존중과 배려의 평형수를 가정에, 학교에, 직장에, 사회에 채워 넣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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