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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4-07-16 09:19:57
  • 수정 2014-07-16 09:5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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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1월 육군훈련소 중대장이 화장실 청소가 미비하다는 이유로 훈련병들에게 강제로 인분을 찍어먹게 한 사건이 있었다. 그리고 같은 해 28사단에서 총기난사사건이 벌어져 여덟 명이나 되는 장병들이 숨졌다. 이에 두려움을 느낀 나는 입영을 이런저런 핑계로 늦추다가 더 이상 늦출 수 없어 2007109일 소가 도살장 끌려가듯이 육군훈련소에 입소하였다.


 그런데 소문과 달리 훈련소 분위기가 밝았다. 조교는 훈련병들에게 존댓말을 하고 있었다. 훈련을 미처 따라가지 못하면 윽박지르는 것이 아니라 격려하며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또 동기들에게는 전우애를 일깨워 서로 돕도록 하였다. 그러니 조교와 훈련병, 훈련병과 훈련병들 사이에 존중하고 배려하는 자세가 자연스럽게 습관화되었다. 이러한 존중과 배려를 더욱 실감한 것은 훈련소를 마치고 부대 배치를 받고 나서였다. 6군단 휘하의 하급부대였는데 밝은 병영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우고 모든 부대원들은 항상 상호존중과 배려를 외치고 있었다. 일과가 끝나면 나를 빛나게 하는 힘바꿔나가요라는 노래가 내무반에 울려 퍼졌다.


아직 이등병 시절에 군단 사령부에서 있었던 신년행사에서는 정말 하늘같은 군단장님 앞에 설 기회가 있었다. 그때 내 이등병 계급장을 본 군단장님께서 웃음을 머금은 목소리로 아이고. 앞날이 깜깜하겠구나.’ 하시며 악수를 청하셨다. 주위에서 웃음이 터졌다. 비로소 군단장님 얼굴을 바로 본 나도 얼떨결에 손을 내밀며 아닙니다.’했지만 눈물이 핑 돌았다. 군단장님의 미소와 손으로 전해지는 따뜻한 체온은 이등병의 긴장을 한 순간에 풀어주는 감동이었다. 부드러운 농담 한마디로 나를 단숨에 군인으로 만들어주신 이 분이 바로 정두근 중장님이시다. 부대로 돌아가는 길에 선임들에게 들으니 내가 훈련소에서 보고 배운 존중과 배려도 직전에 군단장님께서 훈련소장을 하시며 정착시킨 병영문화라고 하였다. 이후 나의 군 생활은 사회에서도 실천하지 못한 상호존중과 배려를 내면화하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전역 후 나는 대학생 6.25 전적지 답사 대장정에 참가할 기회가 있었다. 비록 전역을 했지만 나는 기가 살아있고 적과 싸우면 반드시 이기는 진군부대의 일원이었다는 자긍심으로 답사 기간 동안 모자에 6군단 마크를 자랑스럽게 달고 다녔다. 그런데 뜻밖에도 대구에서 제2작전사령부 부사령관으로 계시는 정두근 중장님을 만났다. 장군님께서도 나만큼이나 반가워하셨다. 사병과 중장이라는 까마득한 거리에도 불구하고 상호존중과 배려라는 공통분모가 있었기에 계급을 잊고 즐거운 대화를 나누었다.


 그 후 장군님께서는 전역과 동시에 ()상호존중과 배려 운동본부를 출범시켰고 나는 망설임 없이 달려갔다. 그리고 상호존중과 배려의 정신을 군대에 뿌리내리고 싶어 학군단에 지원했다. 처음 그렇게 가기 싫고 두려웠던 군대였지만 나는 다시 한 번 군문을 두드리고 있다. 정두근 장군님처럼 장교의 길을 걸으며 상호존중과 배려로 진정 기가 살아있는 강한 군대를 만들어 지휘하고 싶어서이다. 내 마음 속에 정 장군님은 육군 중장이 아니라 군의 최고지휘관 원수였다. 그래서 나는 학군단 제복을 입고 원수 계급장이 달린 군모를 준비해 다시 장군님을 찾아갔다. 장군님의 뜻을 이어받아 상호존중과 배려의 병영문화를 정착시킨다면 최근 국민을 실망시킨 22사단 임 병장 사건과 같은 일이 결코 있어날 수 없음을 나는 체험으로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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