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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4-11-21 12:13:10
  • 수정 2014-11-21 12: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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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고착화된 분단구조극한의 남북의 군사적 대치상황하에서 경직된 수동형 병영문화, 과연 어떻게 상호존중과 배려의 능동적 발산이 이루어지는 병영문화로 혁신시킬 것인가?


 


우리 헌법은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국방의 의무를 진다'(헌법 391)고 규정한다. 현행 병역법은 사병은 징병제를 원칙으로 삼고 예외적으로 각종 대체 복무를 허용한다. 두말할 나위 없이 무릇 헌법은 나라의 최고 규범이다. 그렇다면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는 실태는 어떠한가? 지난달 10일 병무청을 상대로 한 국회 국방위 국정감사의 통계자료를 보면 외국시민권을 취득하고 한국국적을 포기하면서 병역의무를 면제받는 해외유학생 수가 무려 년간 34백여명 이상이고 지난 5년간(2009~2013) 숫자를 합치면 무려 17,306에 이른다고 한다. 문제는 이들 중 상당수가 대한민국의 사회지도층 또는 재벌가 부유층의 자제라는 사실이다. 미래 대한민국의 지도층으로 성장할 이들 계층에서 병역면제자가 많다는 현실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분노와 박탈감을 안겨주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자신의 꿈도 미래도 국방색가득한 그곳에서는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다. 사회로부터 격리된 군대는 분명 또 하나의 사회이다. 적응하기 어려운 곳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학교 등교하듯이 적응이 쉬운 곳도 아니다. 훈련소에가면서 자신이 입고 갔던 의복을 입소식을 마치고 나서 고향집에 보내면, ‘충성소포물을 받아든 가족들은 눈물이 앞을 가릴 수밖에 없다. 애지중지 뒷바라지 했던 자식이 어느덧 늠름하게 자라나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있다는 뿌듯함도 있겠지만, 혹시나 다치지나 않을까, 적응은 잘 할까, 매시각 걱정이 앞서기 마련이다. 낯설 수밖에 없는 내무반 생활과 고된 훈련, 매일같이 반복되는 심야와 새벽의 경계근무 등은 이 땅 젊은이들이 거쳐가는 삶이자 시간이자 눈물의 이야기다. 군가 진짜사나이 가사엔 부모형제 나를 믿고 단잠을 이룬다고 하였지만, 사실 자식을 군에 보낸 부모라면 누가 편히 잠자리에 들수 있겠는가?



우리나라 헌법은 또 누구든지 병역의무의 이행으로 불이익한 처분을 받지 아니한다'(헌법 392)고 선언한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 실제로 군 복무자는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감수해야만 한다. 복무기간중 사회생활과의 단절, 바깥 세계로부터 격리·소외된 것 자체가 불이익이고 학생의 경우 복학을 한 뒤에는 뒤쳐진 수학(修學)능력을 끌어올려야 한다. 대부분의 병사들이 본인 스스로 원해서 입대한 것도 아니거니와, 과거엔 사회일반의 관리씨스템에 비해 군의 행정력이 앞선 적이 있었다지만 지금은 군 복무경험이 향후 삶에 도움이 된다고 확신할 수 있는 부분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이 당사자들의 불만이다. 따라서 군대가 사람을 만든다는 전래의 경구(警句)도 왠지 허사로 맴도는 느낌이다.


국방문제는 고래(古來)로 공자(孔子)가 정치의 3요체로 꼽았을 만큼(子貢問政, 子曰, 足食, 足兵, 民信之矣 顔淵7) 한 나라를 이끌어 가는데 있어서 핵심적인 과제중의 하나이다. 현대사회에서도 군()의 구성과 운영에 자유민주주의 헌정의 원리가 어떻게 구현되어야 할 것인가는 많은 나라에 공통된 과제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 군대의 주인은 누구인가? 또 누구를 위한 군대이고 우리 병사들은 어떤 예우를 받아야 마땅한가?


  



2.부하 종기를 빨아준 오기吳起존중과 배려의 병영문화에서 요청되는 지휘관의 자세


 


  군대는 전시에 대비하여 운용되는 조직이다. 따라서 실제 전투,전쟁상황이 발발했을때 얼마만큼 장사병이 일치단결하여 전투수행능력을 극대화 시킬 수 있는가 하는 것이 핵심과제이고 이를 위해 수없이 훈련을 반복한다. 그러나 동서고금을 관통하는 부대의 핵심전력은 인화(人和)이다. 인화는 부대구성원간의 사랑(戰友愛)를 말한다. 아무리 기상조건이 좋아도 지형지세의 이로움만 못하며 지형지세의 이로움도 부대구성원들의 인화단결을 이겨낼 수 없는 것이다. (孟子曰 天時不如地利 地利不如人和 孟子<公孫丑 下>


중국의 전국시대는 그 명칭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당시 일곱 개의 영웅국가(戰國七雄)들이 먹느냐 먹히느냐 하는 초긴장의 전쟁국면에서 치열한 대결구도를 유지하고 있을 때였다. 이전 춘추(春秋)시대에 비해 전쟁규모가 커졌을 뿐만 아니라, 전쟁기간 또한 길어졌기 때문에 병사들의 사기(士氣)를 유지시키는 일이 가장 중요한 과제였다. 중국 전국(戰國)시대 초기 명장 오기(吳起)를 발탁한 위문후(魏文侯)는 문무를 겸비한 당대의 명군이었는데 그가 병사를 존중하고 배려한 고사는 병사관리방면에서 불후의 리더십으로 칭송받고 있다.


 


한번은 한 병사가 종기로 고생하자 오기(吳起)가 직접 입으로 그 종기를 빨아 치료했


. 그 병사의 모친이 이 이야기를 듣고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이웃사람이 매우 의


아해하며 물었다.


그대의 아들은 병사에 불과한데도 장군이 직접 그대 아들의 종기를 입으로 빨아 치


료해 주었는데 감사할 일이지 어찌해 운단 말이오?”


이에 병사의 모친이 울면서 대답했다.


그렇지 않다오. 옛날 오공이 내 남편의 종기를 빨아준 적이 있었지요. 이에 내 남편


은 감복한 나머지 불리한 전장터에서도 후퇴할 줄도 모르고 분전하다가 마침내 전사하


고 말았다오. 오공(吳公)이 이번에는 다시 내 아들의 종기를 빨아주었으니 나는 내 아들


이 어느 곳에서 죽을지 모르게 되었소. 그래서 통곡하는 것이라오.”


史記<孫子吳起 列傳>


 


마침내 오기(吳起)는 병사들을 지휘하여 진나라의 5개 성읍을 취한다. 이후 진나라는 오기가 서하 땅을 지키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는 아예 침범할 생각을 갖지 못하게 되는데 이 일화에서 오기연저(吳起吮疽)라는 성어가 나왔다고 한다. 즉 오기가 (부하의) 종기를 빤다는 뜻이고 훗날 장수가 군사들을 잘 보살펴준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만일 병영의 지휘관들이 부하들을 아끼고 오기연저(吳起吮疽)를 몸소 실천한다면, 그런 지휘관과 함께 복무하는 병사들의 경우엔 적어도 군무이탈이나, 탈영 외출,휴가미귀등의 사건사고를 일으키는 일이 줄어들지 않았겠는가 하는 추리적 논거를 펼쳐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오기(吳起)같은 지휘관이 바로 지금 우리 병영에 요구되는 간부(사관)의 표상이다. 오기는 부하사랑을 통해 자발적 능동적 충성심을 배양시켰다. 공자를 비롯한 유학사상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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