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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4-11-24 02:29:14
  • 수정 2014-11-25 21:0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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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존배에서는 2002년 6월 21일 제1회 희망포럼을 시작으로 격월로 포럼을 개최하고 있다. 지난 11월 20일(목)에는 용산전쟁기념관에서 조서환마케팅그룹 조서환 회장을 초청강강사로 초빙한 제16회 희망포럼이 열렸다. 조서환 회장의 약력을 소개하고 강의 주요내용을 소개한다.

조서환
∙주요 경력
현 (주)조서환마케팅그룹 회장
현 (주)프로매치코리아 회장
현 (사)상호존중과 배려운동본부 부총재
1992년 미국 다이알사 마케팅 이사
1994년 스위스 로슈사 마케팅 이사
2000년 애경산업 마케팅 상무이사
2001년 KTF 마케팅전략실장 상무
2008년 국가브랜드 자문위원
2009년 KTF 부사장
∙저서
2004년 한국형마케팅(21세기북스)
2005년 대한민국 일등상품 마케팅전략(위즈덤하우스)
2011년 모티베이터(위즈덤하우스)
2014년 근성, 같은 운명 다른 태도(샘앤파커스)
∙수상 경력
2000년 능률협회 경영인 대상
2003년 경희대 경영인 대상
2008년 전경련 우수강연상
∙방송 출연
KBS 아침마당 출연 2회(2008년 2월 11일 / 2009년 6월 18일)
KBS 강연 100℃ 제1회 출영(2013년 5월 18일)
CTS 내가 매일 기쁘게(2014년 6월 30일)



 



 


 


혁신, 근성이 답이다


 


산골 소년 도전과 좌절, 그리고 응전


 


나는 충남 청양 칠갑산 자락 산골에서 태어나 자랐다. 청양고추로 유명한 마을이었으니 우리 집 역시 대대로 고추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어머니는 자녀를 10명이나 낳아 8명만 살렸다. 무려 20년간 애를 낳은 셈인데 나는 다섯째이다. 아버지는 나를 학비가 면제된다는 이유로 육군3사관학교에 진학시켰다. 그런데 장군을 꿈꾸던 스물세 살 육군 소위는 수류탄 폭발 사고로 오른손을 잃었다. 수류탄을 던지기 위해 팔을 뒤로 쭉 뻗은 상태에서 폭발했으니 1초만 늦게 수류탄을 집었으면 내 몸은 그대로 공중분해 됐을 것이다. 손이 없어진 아들을 찾은 아버지는 대성통곡을 했다. 그리고 한 가지 당부를 하셨다.


"전 재산 다 팔아 너 줄 테니 꼭 살아야 한다."


온몸을 붕대로 칭칭 감고 있는 병상에 초등학교 1학년 때 만난 지금의 내 아내가 나타났다. 고마움에 오히려 할 말을 잃고 있던 나는 아내에게 떠나라고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였다. 그러자 아내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까진 당신에게 내가 필요 없었는지 모르지만 지금부턴 당신 곁에 내가 있어야 해요.”


이런 여자를 두고 좌절할 수는 없었다. 아내는 가족들의 극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나를 선택했다. 그러니 나는 내 목숨이 붙어 있는 한 반드시 이 아내를 행복하게 해주어야 했다. 손은 틀렸으니 입을 많이 쓰는 교수가 되겠다는 단순한 생각에 왼손으로 열심히 쓰며 공부해 경희대 영문과에 진학했다. 그렇지만 대학 4학년 때 이미 두 아이 아빠가 된 나는 교수의 꿈보다 가족생계가 급했다.




애경과 KTF에서의 성공 신화


 


이때부터 내가 겪은 좌절은 처절하기만 했다. 오른손 없는 날 뽑을 회사는 없었다. 1981년 하반기 애경유지 면접에서는 손이 없다는 이유로 중도 퇴장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인근 구로역으로 가 전철표를 끊은 나는 극심한 좌절로 철로에 뛰어들 생각까지 했다. 그 순간 꼭 살아야 한다며 울며 내 손을 잡아주던 아버지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미친 듯이 다시 면접장으로 달려갔다. 직원들의 제지를 뿌리치고 면접장으로 달려 들어간 나는 당황해하는 면접관들 앞에서 설움과 울분을 터뜨렸다.


난 깡패짓을 하다가 오른손을 잃은 것이 아닙니다. 국가를 위해 희생했다는 자부심으로 힘든 날들을 버텨왔습니다. 그런데 왜 면접 중단입니까? 양손으로 글씨 쓰는 사람도 있습니까? 저에게는 아직 왼손이 있습니다. 저는 오른손을 잃는 순간부터 삶을 대충 살 생각을 버렸습니다. 그렇기에 가슴은 누구 못지않게 뜨겁습니다. 여러분도 군대에 갔거나 갈 자식들이 있을 겁니다. 혹시 자녀가 저처럼 되었더라도 이렇게 면접 중간에 내보내겠습니까? 절 합격시켜 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앞으로 저 같은 사람이 또 온다면 위로의 말 한마디는 해주십시오.”


그리고 뒤돌아 나오는데 한 여성 면접관이 나를 불렀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녀가 바로 애경 장영신 회장이었다. 그녀는 나에게 방금 한 말을 영어로 해보라고 하였다. 흥분 상태라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어차피 영어로 말하면 알아듣지 못할 것이라는 배짱이 생겨 시키는 대로 하였다. 그리고 며칠 뒤 합격통지 전보를 받았다.


이처럼 극적으로 취업에 성공하였지만 회사에서 나는 고유업무 배당을 받지 못하고 공항에 나가 외국 손님맞이나 하는 픽업맨 생활을 하였다. 그러면서 그 손님들 명함에서 마케팅이란 단어를 발견하였다. 당시만 해도 낯선 단어였다. 대학을 찾아가 물었더니 우리나라도 머지않아 마케팅의 중요성이 부각될 것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나는 대학원 진학을 결심하였고, ‘마케팅에 나의 미래를 던지기 위해 주경야독을 시작하였다. 퇴근 후 회식은 언감생심이었다.


기회는 준비한 자에게 오기 마련이었다. 석사학위를 받을 무렵 외국인 투자가 허용되어 외국인 투자자들이 물밀 듯이 몰려왔고, 나는 회사 마케팅 실무자로 발령을 받았다. 네덜란드인 부장, 프랑스인 상무 그리고 영국인 부사장을 상사로 모시고 럭스’ ‘비놀리아’ ‘썬실크브랜드 매니저를 맡았다. 그러면서 하나로샴푸’, ‘2080치약이란 히트 브랜드를 탄생시켰다. 그러자 헤드헌팅 업계에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결국 장 회장에게 외국기업에서 마케팅 기법을 더 배워 오겠다고.’고 말씀 드린 후 다이알코리아로 이직하였다. 불과 6개월 후 나는 마케팅 중역인 마케팅디렉터가 되었다. 불과 35살 나이였다. 2년 뒤에는 다시 한국로슈 마케팅 이사로 갔다.


그러던 어느 날 장 회장의 전화를 받았다. 그 사이 적자회사로 곤두박질 친 회사에서 나를 필요로 하고 있었다. 월급을 절반 이하로 줄여야 했기에 잠시 고민하던 나는 나를 처음 받아준 회사의 은혜에 보답하기로 결심하였다. 회사 상태를 점검한 나는 애경을 화장품 회사로 변신시켜 다시 흑자로 만들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장 회장에 정계에 진출하였고, 이를 받아들일 수 없던 나는 1001의 경쟁을 뚫고 KTF 마케팅전략실장 상무로 자리를 옮겼다. KTF에서의 내 전략은 난공불락이었던 SKT와의 통신시장 점유율 역전을 위한 대학생 중점 마케팅과 010 번호 도입, 번호이동제 실시 등이었다. 나중에 부사장으로 승진하여서는 KTF ‘(SHOW)’ 브랜드를 탄생시켜 KTF를 비약적으로 성장시켰다.


나는 2008KTF 부사장 시절이 인생의 정점이었다. 졸저 모티베이터(동기를 부여하는 사람들)’가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각종 TV와 라디오 출연 제의가 쇄도했다. 각종 강연도 줄을 이었다. 2007년부터 2년간 회사는 전무후무한 최고의 성장가도를 달렸다. 그런데도 무슨 까닭인지 회사는 나에게 1년간 매달 월급 줄 테니 일하지 말고 놀면서 대기하라는 대기명령을 내렸다. 이를 계기로 나는 50대 중반 나이에 인생 2모작을 진지하게 고민했다. 때마침 전 세계 72개국에 진출해 있는 세라젬 그룹에서 러브콜이 왔다. 글로벌 마케팅을 꿈꾸던 나에게는 좋은 기회였다. 200910KTF에 등기 속달로 사표를 제출하고는 화장품 사업을 하기 위해 세라젬에 입사해서 3개월 만에 중국과 한국에 각각 회사를 설립했다.


Never give up!


 


손 없는 세월을 어떻게 인내하며 사셨습니까.”


숱하게 받는 질문이다. 나는 그때마다 간곡히 들려주는 말이 있다.


인생은 멘털 승부이다.”


돌이켜 보면 내가 마케팅 업계에서 이만한 지금의 위치에 오른 것은 어떤 역경에도 굴하지 않겠다는 생각의 태도덕분이다. ‘근성이 답이다.’라는 마음가짐 하나로 이겨냈다. 생각의 태도를 바꾸는 혁신과 근성이 있어야 역경을 극복할 수 있다. 위대한 사람은 기회가 불공평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사회는 공평하다. 할 수 없어도 할 수 있다고 말하자. 일단은 들이대자. 세상에서 가장 좋은 대학은 들이대()이다. 처칠의 말을 기억하자.


Never give up!(절대로 포기하지 말라!)


Never never give up!!(절대로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


Never never never ever give up!(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다시는 포기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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