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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3-09-26 11:54:03
  • 수정 2013-10-10 08:0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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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많은 사람들이 인문학에 관심을 갖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는 인간이 어떤 문양을 가지고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 때문일 것이다. 인문은 인간의 글이 아니라 인간의 문양이다. 그렇기에 인문학이란 인간이 어떤 아름다운 문양을 갖고 살아가느냐에 대한 과학적 체계라고 할 수 있다. 과연 나는 인간으로서 어떤 문양을 그리며 살아가고 있는가.


인간이기에 만들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삶의 문양은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이다.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하면 결국 나에게 행복이 되어 돌아온다. 인간이 추구하는 목표는 따뜻한 사랑()으로 옳은 길()을 가면서 예()를 갖추어 서로 존중하고, 옳고 그름을 따질 줄 아는 지혜()를 갖추는 것이다. 이 위대하고 아름다운 인의예지(仁義禮智)의 아름다운 문양을 들추다 보면 우리의 정체성도 찾을 수 있다. 이를 맹자는 이렇게 정리했다.


측은지심(惻隱之心)은 인지단야(仁之端也),


수오지심(羞惡之心)지단야(義之端也),


사양지심(辭讓之心)지단야(禮之端也),


시비지심(是非之心)지단야(智之端也)니라.


이는 인간의 천성이기에 명심보감 111구에 실려 있다. 천성이라는 인간의 위대한 문양을 그리며 선하게 사는 사람은 하늘이 반드시 복으로 보답한다고 하였다. 결국 배려와 존중은 나의 행복이니 우리가 꿈꾸는 이 신념은 점점 확산되리라는 확신을 가져도 좋다.


 



측은지심(惻隱之心)은 인지단야(仁之端也)


()은 논어에 가장 많이 나오는 구절로 사람은 혼자 존재할 수 없으니 사람 인()에 두 이()자를 쓰고 있다. 상대가 있기에 내가 있을 수 있다. 그렇기에 인()은 인간에 대한 배려를 담은 측은지심(惻隱之心)이다.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 勿施於人)


타인()의 입장에서 늘 고민하라()고 하였으니 내가 하고 싶지 않은 말은 남에게도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출문여견대빈(出門如見大賓), 즉 집밖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을 나의 가장 큰 손님으로 여긴다면 인()을 실천할 수 있다. ()을 가리켜 인간이 갖고 태어나는 가장 인간다운 씨앗이라고 하는 까닭도 이 때문이다.


인이불인(仁而不仁)이면 여예하(如禮何), 인이불인(仁而不仁)이면 여락하(如樂何)리오.


인간에게 사랑의 씨앗 인()이 없다면 예의인들 무슨 의미가 있고, 제아무리 흥겨운 음악이 있다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냐는 말이다. 나아가 인간이 인간답지 못하면 예악(禮樂 문명) 역시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수오지심(羞惡之心)은 의지단야(義之端也)


()는 인간이 가야 할 가장 편안한 길이기에 인지안로(人之安路)라 하였다. 부끄럽지 않은 인간의 길을 간다면 행복하고 편안할 수밖에 없다. 수오지심(羞惡之心)이 뜻하는 부끄러워 할 줄 아는 마음을 가지려면 우선 흔들리지 않는 마음(不動心)이 있어야 한다. 맹자는 나이 40이 되니 부동심이 생겨 불혹(不惑)이라 하였다. 옳음은 인간이 가야 할 바른 길이고, 의로운 길을 가면 이익이 있기 마련이므로 선의후리(先義後利)를 지켜야 한다. 또 옳음을 실천하고자 하는 정신적 에너지를 충전하기 위해 호연지기(浩然之氣)를 키워야 한다. 때때로 유혹에 빠져 가지 말아야 할 길을 가는 사람들은 호연지기를 잃은 탓이다. 이를 잃으면 인간은 정신적 굶주림에 빠지거나 반대로 정신적 에너지가 충만해지면 부동심을 갖춰 아름다운 문양을 만들 수 있다.


상대를 모두 큰 손님으로 여길 줄 아는 따뜻함과 공경심(), 부끄러워할 줄 알고 호연지기의 에너지로 옳고 그름을 따지며 내가 가야 할 길을 찾아내는 의로움() 다음의 천성이라면 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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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양지심(辭讓之心)은 예지단야(禮之端也)


사양지심(辭讓之心)이 담고 있는 나눔은 인간만 갖고 있는 위대한 천성이다. 고도의 인생관을 갖고 있는 사람만이 먼저 하시지요.’라는 배려가 가능하다. 극기복례(克己復禮)는 이기적인 나()를 이기고() 상대방에 대한 배려()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극기훈련은 바로 이기적 나를 이기기 위해 필요하다. 그림을 그리려면 흰 바탕이 있어야 하므로 회사후소(繪事後素)라 하였다. 인간이 인간다운 문양을 그리려면 가장 기본적인 것이 사양의 예이다. 예가 없으면 아무리 화려한 인생을 살아도 헛된 문양에 불과하니 아무런 의미가 없다.


자왈(子曰)


비예물시(非禮勿視)하고 비예물청(非禮勿聽)하고,


비예물언(非禮勿言)하고 비예물동(非禮勿動)이라.


예의 문양을 그리며 살라는 논어의 이야기이다. 예가 아니면 보지도 말고, 예가 아니면 듣지도 말고, 예가 아니면 말하지도 말고,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도 말아라.


 


시비지심(是非之心)은 지지단야(智之端也)니라


옳고 그름을 가리는 시비지심(是非之心)을 위해 인간에게 필요한 것이 지혜()이다. 이를 위해서는 누구에게나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하기에 불치하문(不恥下問)이라 하였다. 존중과 배려는 묻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당신이 행복해지겠는가, 어떻게 하면 당신이 더 아름다워질 수 있는가? 이 물음 속에서 명백한 지혜가 나오기 마련이다. 묻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 어떻게 하면 지혜로운 사람의 문양을 본받을까 고민하며 모방하는 사람이 아름다운 문양을 그린다. 견현사제(見賢思濟) 역시 타인의 장점을 본받으라는 뜻이다. 나보다 나은 사람을 보면 늘 자극 받아야 한다. 이것이 지혜로운 자의 삶의 방식이며 지()의 문양이다.


존중과 배려는 인간이 갖고 태어난 위대한 문양이다. 그런데 여러 가지로 어려운 세상 살며 집나간 문양이 많다. 이를 다시 찾아와야 한다. 가치 있는 삶을 위해서는 내 삶의 문양을 어떤 모습으로 가꾸어야 할지 진지하게 성찰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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