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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5-12-04 18:02:17
  • 수정 2015-12-04 21:3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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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흐른다. 생전의 거산(巨山)이란 아호답게 우리나라의 민주화에 큰 산만한 공을 이루셨던 분이 영면을 하셨다. 그 분의 서거를 통해 지난 한주동안 국내외 많은 보도매체들도 박정희의 유신시대와 전두환의 군사독재시절에 그 분이 어떻게 올곧고 치열하게 싸워왔는가를 앞 다투어 조명해줌으로써 한동안 당연한 것인 양 잊고 살아왔던 우리들에게 민주주의 소중한 가치를 다시 되돌아 보게 해주었다. 지금의 4,50대 이상 세대들에겐 이런 저런 공과(功過)까지도 포함하여 그분의 정치역정과 언행들이 또렷하게 각인되어 있지만, 20대 미만의 젊은 세대들에겐 전직대통령중의 한분으로만 막연히 알고 있었다가, 이번에 그 분의 서거를 계기로 비로소 이 땅에서 고질적인 군부독재의 악순환이라는 고리를 확실히 끊어낸 지도자로 재평가를 받게 되었다고 하니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 젊은층을 비롯하여 상당수의 국민들이 다가오는 미래는 결코 희망적이지 않다는 것에 공감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비관론이 우세한 것은 비단 경제적인 이유에서 뿐만아니라 사회공동체와 국가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신뢰와 원칙이 곳곳에서 무너져 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민주적이고 개방형 리더쉽이, 21세기로 들어선 인류사회의 대세임에도 우리 사회에선 다시금 독선과 독단이 횡행하고 있다. 지금 시점에서 그동안 우리사회가 쟁취해왔던 민주주의의 소중한 가치를 다시금 생각하는 계기를 갖게 된 것 또한 우연의 일치는 아닐 것이다.


 



시인 고은선생은 한반도를 가리켜 세계사적 모순이 집약된 곳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제모순의 원인과 근인은 모두 일제식민통치의 잔재를 청산해 내지 못한 것과 분단(分斷)상황이다. 끔찍한 동족상잔이 있었고 지금도 거두어 지지 않은 냉전의 그늘속에서 너무나 오랫동안 적()이 아니면 아군(我軍)으로 편을 갈라 상호간에 때려잡자!, 쳐부수자!, 무찌르자!”등 살기 가득한 구호속에서 집단적인 적대감을 갖도록 강요받고 살아온 것이다. 이보다 더한 야만(野蠻)이 또 있을까? 한반도에서 태어나 분단과 냉전시대를 피할 수 없는 숙명으로 알고 살아왔던 이 땅의 장년(壯年노년(老年)층들에게 충성(忠誠)’이라는 구호나 개념은 듣는 순간 뭔가 가슴 뭉클한 느낌이 들면서도 동시에 묵직한 부담을 느끼게 한다. 아마도 이같은 정서는 세대를 이어 전승되어 지금 이 시간 군복무에 임하고 있는 60만 대한민국 장병들에게도 이어지고 있을 것이다.


60년대 후반 베트남전쟁이 본격화 되면서 70년대 중반까지 동아시아 일부 국가들은 직간접적으로 준()전시상황에 놓였었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에 처한 것은 여전히 휴전상태에 놓였던 한반도였다. 1968121일 김신조 일당이 벌였던 청와대습격사건을 비롯하여 그해 가을 울진삼척지역에 무장공비침투가 세 차례나 이어졌다. 베트남 전쟁이 한참이던 때에 북한은 한반도에서의 게릴라 활동가능성을 탐색해 본 것이었으며 남한에서 베트남 전쟁과 같은 전쟁이 수행가능할지 시험해 본 것이었다. 이에 대응코자 향토예비군이 창설되었고 이후 무장공비와 간첩신고요령을 담은 각종 전단지와 포스터가 각급 학교는 물론 비롯한 거리의 공공장소 곳곳에 나붙게 되었다.


 


필자가 초등학생이었던 70년대 초 어느해 봄엔 김일성이 올해 생일상은 서울에서 받겠노라고 공언했다는 유언비어가 떠돌았다. 부패했던 베트남의 티우정권은 1975430일 마침내 호치민에 패하고 적화가 되었다. 그 무렵엔 해마다 6월이면 전국적으로 각급 학교 학생들을 인근 공설운동장이나 역광장에 동원시켜 반공궐기대회김일성 화형식을 거행하였고 교육기관은 이를 충성심 배양과 호국안보교육이라며 수업활동으로 대체시켰다. 지금 5,60대들은 분단과 냉전시대 속에서 자라오면서 어려서부터 특정 이념과 사상을 악마와 원수로 규정하여 증오하고 적대시하는 교육을 받아 했으니, 이는 분명 분단시대가 안겨준 또 하나의 정신적 폭력상황이 아닐 수 없었던 것이다. 국가는 전국민을 인적 자원화하여 국가총동원체제로 편성하여, 구성원들을 충성이라는 명분논리로 결집시키고자 했고, 또 희생을 강요해왔다. 이같은 군사파시즘적 정치문화에 대한 일체의 반대의견들은 국론분열행위라고 지탄을 받게 하거나 심지어 이적행위(利敵行爲)로 단죄기도 하였다. 이름하여 국민총화(國民總和). 베트남패망을 계기로 19755월에 설치되었던 학도호국단은 고등학생부터 군사교육을 시키면서 총력안보(總力安保)를 내세웠다. 군복무에 나선 장사병들이 목청이 아프도록 불러야 했던 군가가사는 대부분이 충성예찬이었다.




일제식민통치기간에 강제 징용,징병을 당해야 했던 식민지 조선인들에게 강요된 일본제국주의 천왕에 대한 충성과 전통시대 우리의 선비들이 행했던 은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공자와 그 제자들의 문답을 기록한논어(論語)의 많은 가르침 중에서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배려의 행위규범인 충()에 대한 정의와 설명을 빼놓을 수 없다. 공자는 모든 혼란의 근원을 인간의 이기심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보았다. 특히 당시의 지도층 즉 군자(君子)라면 적어도 나보다 남을 먼저 배려하는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 바로 타자에 대한 적극적인 배려와 사랑'()을 뜻하는 것으로 내가 서고자 하는 자리에 남을 세워주고 내가 달성하고 싶은 목표를 남이 이루도록 한다(己欲立而立人 己欲達而達人 기욕립이립인 기욕달이달인).”를 실천하는 것이다.


 


한해가 저물어 가는 이때에 평생 독재와 싸우다가 영면하신 김영삼 전대통령이 생전에 (말씀으로 직접 남기시지는 못했지만), 유묵(遺墨)으로 남긴 글씨가 통합과 화합이라고 해서 다시 한번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일체의 반대가 허용되지 않았던 암울한 시대의 어둠을 헤쳐온 파란만장한 인생의 짐을 내려 놓으시며 던져준 화두이다. 이는 유신시대의 관제성 총화단결(總和團結)과는 분명이 그 격이 다른 것이다.


 


신라의 원효대사(元曉: 617-686)는 불교의 특정 한 종파에 치우치지 않고 화엄경·열반경·반야경·미타경·능가경등 대승 불교 경전을 두루 섭렵하여 그 뜻을 깨우친 것으로 유명하다. 이러한 깨우침을 바탕으로 원효는 특정 종파를 고집하지 않고 전체 불교의 가르침 전체를 한 가지 이치에 귀납하고 종합 · 정리하여 내적 분열이 없는 보다 높은 입장에서 불교 사상 체계를 세운 것으로 평가를 받아왔다. 이러한 그의 조화적인 불교 사상을 화쟁사상(和諍思想)이라고 하는데 그의십문화쟁론(十門和爭論)은 이러한 화쟁사상을 잘 보여주는 핵심적인 저술이다.


 


조계종은 여기에서 착안한 화쟁위원회를 두어 우리사회의 다양한 갈등구조에 대해 불교적 해법을 중도정견 입장으로 중재를 도모해왔다. 물론 사회적 약자를 보살정신으로 살펴주려는 역할 또한 상생통합을 통한 정토구현의 출발점이 될 수 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정작 동국대사태와 용주사 사태등 종단내부의 비상사태와 같은 현안엔 거의 손을 놓고 있던 것이 사실이다. 단식중인 학생을 만났다곤 하나, 그것도 진정한 해결을 위한 노력이라기 보다는 여론에 밀린 통과의례로 남게 될 공산이 크다. 그러다가 이번에 민노총 위원장이 조계사로 피신을 하여 민감한 정치적인 이슈로 부상하자, 일부 언론엔 마치 조계사와 화쟁위가 과거 고 김수환 추기경 재임당시 명동성당에 기대되었던 민주성지(聖地)로 비쳐지기도 한다. 이래 저래 이같은 상황을 바라보는 불자들의 마음은 (속 사정을 잘 모르는 일반인들과 )달리 매우 거북하고 씁쓸하다.


 


우리는 권위주의적이고 폭력적인 군사통치문화를 청산해 냈지만, 반면 그런 문화속에서 성장하면서 혹여 우리 자신도 은연중에 독선적 아집과 독단적 폭력성에 길들여져 오지 않았는지 냉철하게 반성해 보아야 한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의견을 배제하고 자신만이 옳다고 고집하는 독선(獨善)과 독단(獨斷)은 끝내 권한()행사의 독재(獨裁)가 되어 반대세력을 탄압하고 말살하게 된다. 최근 파사현정 정론직필을 기치로 내걸고 불법(佛法)수호하고자 소신보도를 해온 불교계 일부언론들에 대해 총무원은 해종(害宗)세력이라 규정을 하고 해당언론사 기자들의 출입을 금지시키고, 해당 언론사 싸이트 접속을 차단시켰으며, 전국의 산하 본말사를 통해 광고게제를 금지시켰다고 한다. 자본에 대한 욕망을 부정하고, 자본의 횡포에 맞서야 할 불가에서 거꾸로 자본(광고중지)을 무기로 양심언론을 고사(枯死)시킬려고 하고 있으니 이렇게 어처구니가 없는 모순이 또 있을까? 그렇다면 이같은 사태는 과연 1974년 동아일보에 대한 유신정부 광고탄압과 무엇이 다른가? 뿐만 아니라 동료 스님들의 낯부끄러운 범계치부를 지적하고 비판하면서 종단정화를 주장하였다고 하여 관련 스님들에게 줄줄이 소환장을 발부하고 제적위협까지 가하고 있다고 한다. 게다가 이미 여러 차례 보도가 되었지만 청정도량을 지켜주고 승가답게 여법하게 수행정진을 해달라고 간청하는 재가불자들에 대해 고소장을 남발하여 소송이 진행중에 있다. 이러고도 원효대사의 화쟁(和爭)정신을 말할 수 있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부처님은 숫타니파타(Sutta Nipāta)에서 말씀하셨다.


출가수행자나 말많은 세속인들에게 욕을 먹거나 불쾌한 말을 듣더라도 거친 말로 대꾸해서는 않된다. 진정한 수행자는 거친 말로 대꾸하지 않는다


 


거대자본은 쉼없이 자기팽창을 하며 거침없는 횡포로 중생들을 압박하고 있다. 사부대중 모두가 참된 화쟁정신을 되찾아 영적(靈的도덕적 각성과 변화를 통해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서 물화(物化)된 세상에 맞서 새로운 정토를 구현하려는 노력을 펼쳐나가야 한다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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