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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6-08-05 16:52:45
  • 수정 2016-08-06 09:2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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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는 순간 뭔가 낯설지 않다는 느낌과 함께 꼬집어서 무엇이라고 설명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아줌마는 나라의 기둥의 약칭인 ··는 김용숙 대표가 지난 1999년 같은 이름의 책을 김영사에서 출판한 것이 계기가 되어 출범하였다.

김 대표는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이다. MBC 탤런트 5기 출신으로 지금도 활발하게 활동하는 동기로는 고두심·이계인 등이 있다. 그런데 그녀의 연기 생활은 그리 길지 않았다. 연기자에서 대한항공 객실 승무원으로 변신해 세계 여러 나라를 비행하며 새로운 세상에 대한 꿈을 키웠으나 결혼을 하며 당시 사회 분위기에 따라 퇴직을 해야 했다. 평범한 아줌마 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그렇지만 세상을 향한 주체 못할 열정으로 인해 그녀는 불과 몇 년 만에 사업가의 길로 들어섰다. 여성의류 브랜드 사업으로 탄탄한 기반을 닦을 무렵 예상치 못한 I.M.F라는 위기 닥쳐왔고, 그녀 역시 이 격랑을 피할 길이 없었다. 의류업체들이 줄줄이 도산하며 그녀도 빚더미에 앉은 채 남대문 시장으로 나가 옷 장사를 시작하였다. 시장은 남들에게 부러움을 샀던 탤런트에, 스튜어디스에, 성공한 사업가라는 화려한 스펙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숱한 뒷담화의 소재거리만 제공하는 억센 삶의 현장이었다. 그래도 이를 악물고 세상 낮은 곳에서 새로운 삶을 배워가던 그녀에게 설상가상으로 날벼락이 떨어졌다. 일억 원 가까운 세금이 부과된 것이었다. 개인의 잘못도 아닌 I.M.F로 인해 거리로 나앉다시피 한 망한 사업자에게 부과된 세금은 아무리 곰씹어보아도 부당했다. 그래서 아무런 법률지식 없이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였다. 무모한 짓거리라고 주위에서 모두 만류했지만 그녀는 정의에 대한 신념 하나로 외롭고 고통스러운 나 홀로투쟁을 시작했다. 망한 사업가에게 변호사를 고용할 돈이 있을 리 없었다. 그리고 고등법원까지 올라가는 3년 가까운 소송에서 결국 승소했다. 그 순간 승소의 기쁨보다 증거 수집 등의 재판준비를 하느라 관공서를 오가며 받았던 온갖 수모와 억울함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관공서를 찾아갔다가 이 부서 저 부서 돌림을 당하고, 걸핏하면 담당이 아니라며 외면하는 공무원들의 불성실에 대한 분노가 다시 치밀어 올랐다. 게다가 승소 후에도 압류를 풀어주지 않아 세무서장실까지 쳐들어가 압류해제를 해야 했다. 이에 그녀는 부패하고 무능한 공무원 잡는 깡패로 나설 결심을 하였다. 법과 세상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포복절도할 이야기들을 부끄러움 없이 고백하고, 아줌마 눈에 비친 세상의 모순을 가감 없이 전달하며 기득권자들이 무지렁이 취급을 하는 아줌마의 목소리를 당당하게 외치는 글을 썼으니, 바로 아줌마는 나라의 기둥이다.

이 책은 그녀가 직접 당한 온갖 설움과 억울함을 고스란히 담았기에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대부분의 중앙 언론에서 책 내용을 기사화했다. 그러던 중 조선일보 기자가 그녀에게 아줌마들의 조직을 만들어 세상을 바꾸어 볼 것을 권유했다. 이에 반농담조로 아줌마 반란부대를 만들어 볼까 한 말이 그대로 기사로 나가 동병상련의 아줌마들 전화가 전국에서 걸려오기 시작했다. 출판기념회는 졸지에 아줌마 반란부대창단식이 되고 말았다. 그렇기에 지금도 그녀에게 대장이라고 부르는 아줌마들이 있다. 얼떨결에 반군 지휘관이 된 그녀는 비로소 제대로 된 생활문화개선 NGO단체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이 들어 아줌마 반란부대라는 전투적 명칭을 ‘아줌마는 나라의 기둥(··기)’으 바꾸고 같은 해 12월에 공식적인 출범을 하였다.

이 운동을 하며 김 대표는 참여연대 문화사업국장을 지낼 당시의 경험을 십분 활용하여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 굵직굵직한 것만 보더라도 200111월드컵 아줌마가 책임진다.’는 목표로 개최한 아줌마 마라톤대회, 다음해 10월 여성부 후원을 받아 주관한 이혼에 대한 속마음 토론회’, 2003년 아줌마 문화올림피아드 발족. 아나기 생명운동의 일환으로 모자빈곤과 투병가정 돕기 자선 패션쇼 수차례 개최. ‘녹색성장, 아줌마 손에 있소이다.’라는 주제로 주관한 음식물 자원화 국민대토론회, 10주년 기념 한중일 아줌마 지구 살리기 사업기금 마련을 위한 패션쇼, 남편 기 살리기 운동, 착한 결혼아카데미와 결혼모델사업 등이 있다. 특히 자선 패션쇼에는 전문 모델뿐 아니라 국회의원, 주한 외교관 부부, 사회운동가, 탤런트, 가수 등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무대에 올라 큰 호응을 얻었고 올해에도 또다시 패션쇼를 준비 중이다.

이로써 김 대표는 슬리퍼 질질 끌고 거리로 나서거나 지하철에서 빈 좌석이 나면 몸을 날리는 몰염치, 자신만 생각하는 막무가내 등으로 인해 남성은 물론 여성도 아닌 제3의 성으로 조롱받던 아줌마나라의 기둥으로 격상시켰다. 나아가 아줌마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바로잡고 아줌마의 힘으로 사회부조리를 바로잡아 건강한 사회를 만들자는 뜻에서 아줌마 헌장을 만들어 선포했다.

 

아줌마 헌장

-우리는 아줌마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우리는 산소 같은 사회를 만들기 위하여 신아줌마로 거듭난다.

-우리는 남의 어려움을 나의 일로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돕는다.

-우리는 사치를 좋아하는 아줌마들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 땅에서 공짜문화를 없애기 위하여 노력한다.

-우리는 아무리 어려운 일일지라도 스스로 해결하도록 노력한다.

-우리는 일을 하는 데 있어서 남의 탓, 환경 탓을 하지 않는다.

-우리는 나와 내 가족만을 생각하는 이기주의를 항상 반성한다.

-우리는 남편과 가족들의 협조를 당당히 받는다.

-우리는 경제적 능력이나 전문지식이 없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우리는 문화 교육, 정신 교육을 지속적으로 받는다.

-우리는 목표가 없으면 타락한다는 것을 명심한다.

-우리는 아줌마는 나라의 기둥임을 증명해 보인다.

 




사실 아줌마는 자녀교육권,’소비지출권, 남편조종권이라는 무소불위의 3권을 장악하고 있기에 아줌마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에서 소외되고 무시당해온 아줌마들이 목소리를 높이니 가뜩이나 가정에서 위축된 남편들은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가 또 다른 형태의 아줌마 이기주의가 아님을 보여주기 위해 ··에서는 남편 기 살리기 운동도 병행하고 있다. 이 운동의 실천요강에는 우리는 자녀보다 남편을 우선시한다.' '남편에게 지나친 잔소리를 하지 않는다.' '낭비하는 생활을 하지 않는다.' '남편의 취미를 존중한다.' '시댁식구와 나를 편 가르지 않는다.' 등이 있어 ··운동이 가정의 평화와 행복을 근본으로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면서 ··는 나와 내 가족만이 아닌 우리 가족이 사회 속에서 어떻게 잘 살아갈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실천하기 위한 운동을 하고 있다. 국내뿐 아니라 이웃 나라인 중국, 일본 아줌마들과도 연계한 녹색 생활화운동이 그러한 노력의 결과이다. 세 나라 아줌마들이 함께 녹색 생활화를 실천하자는 취지에서 아시아 생활환경 공동체 한중일 아줌마 지구살리기모임을 발족하였으니 말이다.

이런 활동을 하며 KBS TV '아침마당등 방송에도 고정출연하게 되니 김 대표의 순수성에 대해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는 사람들도 일부 있었다. 그렇지만 김대표는 20124·11 총선에서 집권여당의 비례대표 제의를 미련 없이 거부할 만큼 오직 ··운동에만 전념하였다. 또한 김 대표와 고 여운계씨 장녀 차가현씨 등 ··회원 4명은 2011년에 지상파 방송프로그램 퀴즈쇼 사총사에서 프로그램 사상 최초로 우승해 받은 상금 3,000만원을 전액 ··운동을 위해 기부하였다.



··운동은 미국 언론에서도 관심을 가졌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한국 주부들이 새로운 이미지를 추구한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싣기도 하였다. 이 신문에서는 주부들이 아이 낳고 요리하고 집안청소만 하던 시대는 지났다는 김 대표의 생각을 전하면서 아줌마들이 사회생활을 하는데 가장 큰 걸림돌은 남편이나 부모 또는 사회풍토가 아니라 바로 그들 자신이라고 지적하였다.

그렇지만 아줌마들만의 힘으로 세상을 바꾼다는 것이 결코 녹록한 일이 아님을 해가 거듭하면서 절실하게 느낀 김 대표는 지난 해 배려 문화의 확산과 이를 통한 사회갈등 해결을 목표로 하는 배려문화포럼을 출발시키고 박상증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대한불교조계종 화쟁위원장 도법스님과 함께 공동대표를 맡았다. 문용린 전 교육부장관과 이계진 전 국회의원, 장석춘 전 한국노총 위원장 등은 고문으로, 정승헌 건국대 교수, 정주열 도시형대안학교장, 의정부 화재 현장에서 밧줄로 시민을 구한 이승선씨 등은 운영·집행위원으로 각각 참여하고 있기도 하다. 배려문화포럼은 출범식에서 이념과 진영 갈등을 벗어난 시민운동을 확산하고, 사회지도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이 확대되도록 인성교육 활동에 힘쓰겠다.’고 천명하는 한편, ’우리나라가 경제 대국으로 도약했음에도 국민행복지수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꼴찌 수준에 머물게 하는 갖가지 사회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자신·가족·이웃·자연 배려라는 정신가치를 실현하고자 한다,’ 고 창립 취지를 밝혔다.

창립 취지를 보더라도 배려문화포럼은 상존배 운동본부와 근본이념에서 상통하는 부분이 많으니 앞으로 두 단체는 교류하고 협력의 장을 넓혀갈 수 있을 것이다. 그 외에도 김 대표는 개인적으로 조계종 화쟁위원회 위원이며, 사부대중 100인 대중공사추진위원회 위원으로 우리 사회에서 존중과 배려의 부족으로 빚어지는 갈등 현장이 있으면 어디든 달려가는 맹렬 여성이자, 모범적인 N.G.O 활동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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